‘돈 내고 보세요.’
올해 인터넷 업계가 네티즌들에게 던진 수많은 메시지는 결국 이 한마디로 집약된다.
연초 미국 네티즌들은 과거와 사뭇 달라진 인터넷 업계 분위기에 접했다. 그동안 무료였던 넷제로·주노 등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들이 요금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움직임은 유럽으로도 확산됐다.
또 라이코스·야후와 AOL 등 대형 포털들이 동참했다. 이 업체들은 온라인 광고시장의 침체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유료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경매사이트인 e베이와 온라인 지불사이트인 페이팰이 수수료를 부과했다. 유료화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업체들이었다.
서서히 다가오던 인터넷 무료시대의 종말은 냅스터 소송사태로 바싹 당겨졌다. 우선 냅스터가 유료화 의사를 밝혔다. 오프라인 음반업체들과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무료 인터넷의 대명사인 파일교환 서비스 냅스터가 돈을 받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유료화는 오프라인 음반업계와 온라인 업계의 합작사들인 뮤직넷과 프레스플레이에서 정점을 이뤘다. 네티즌들로서는 바야흐로 음악 등 콘텐츠마저 완벽하게 돈을 내야 하게 됐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인터넷 업체들은 양질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다수의 회원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 왔다. 회원수를 늘려 사이트 인지도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광고매출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거품론이 대두되고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광고매출이 격감, 전략수정이 불가피했다.
더욱이 벤처열풍이 시들해지면서 그동안 인터넷 업체들을 부양해온 투자유치도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거대해질대로 거대해진 몸집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수익모델 개발이 시급해졌다. 인터넷 업체들이 회원확보용 도구로만 사용해온 서비스들을 수익원으로 전환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사실 인터넷 업체들에 있어 유료화는 지상명제나 다름없다. 자본주의시대에 기업들의 영리와 이윤추구는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유료화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확대 재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온라인 시장 전반, 특히 광고시장의 침체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한층 더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려온 인터넷 업체들로서는 피치못한 선택이기도 했다. 익사이트@홈이 파산했고 코바드와 메트리컴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노스포인트는 서비스를 중단했다. 올 한해에만 수많은 인터넷 업체들이 사업을 포기했고 이런 추세는 점점 가속되고 있다. 업계는 어디에선가 이런 고리를 끊어야 했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유료화였다.
그러나 유료화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일부에서는 전략적 검토없이 등 떠밀려 유료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광고 이외에는 별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전술적 고려 없이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유료화를 진행시켰다는 설명이다. 네티즌들 사이에 남아있는 ‘인터넷=무료’라는 등식을 깨기 위해서라도 선결 과제들을 꼼꼼히 따져 풀어가야 하는데도 불구, 발등의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심정으로 마구잡이 유료화에 나섰다는 전문가들의 충고에 업계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 돈이 되는 콘텐츠만으로 몰려드는 콘텐츠 편식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콘텐츠는 최근 들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지는 ‘성(Sex)·스포츠(Sports)·학습(Study)·주식(Stock)’ 등 이른바 ‘4S’ 분야로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가능성일 뿐 독자 브랜드 구축과 이를 위한 업체간 협력없는 마구잡이식 서비스는 실패를 부를 수밖에 없다.
유료화가 진행되면서 대기업에의 집중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현재 세계 인터넷 시장은 AOL타임워너·비방디유니버설·베르텔스만 등 손꼽을 만한 몇개 다국적 업체들에 집중돼 있다. 조사에 따르면 현재 10여개의 대형 인터넷 업체들이 전체 인터넷 사용자 중 60%의 인터넷 사용행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미디어 집중에 따른 폐해가 오프라인에서 지겹도록 지적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미디어를 독점하다시피해온 업체들의 주도권이 온라인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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