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의구심의 불씨

 ◆박재성 논설위원(jspark@etnews.co.kr)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TV가 선보인 것은 1954년 7월 30일로 기록되어 있다. 미국 업체의 한국 대리점(KORCAD)이 20인치 TV를 수입해 일반에 공개했다. 라디오조차도 일본에서 수입하던 때였으니 TV를 처음 본 국민의 반응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그들은 TV를 요술상자쯤으로 여겼다.

 국민의 큰 호응도를 확인한 KORCAD는 미국으로부터 TV수상기와 기술을 도입했다. 그것에 힘힙어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사인 HLKZ-TV가 1956년 5월 12일 개국을 했고 그해 11월 1일 정규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지만 당시는 국민의 낮은 생활수준 때문에 고가인 TV 보급은 미미했다. 결국 광고료에 의존하는 HLKZ는 수입을 올리지 못해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한 차례 주인이 바뀐 후 폐국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1958년 국영방송인 KBS에 의해 HLKZ가 사용하던 채널 9는 부활하게 된다.

 그후로 우리나라는 TV 보급이 늘면서 방송이 활성화돼 TV는 이제 국민들의 생활과 뗄 수 없는 중요한 종합 미디어로 자리를 잡아았다.

 그런데 우리의 TV방송은 초창기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었지만 전송방식은 미국 방식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당시 TV방송 방식은 유럽식(PAL)과 미국식(NTSC)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두 방식을 비교해서 장점이 많은 것을 선택하는 과정은 없었다.

 그러한 것을 생각지도 못한 가운데 TV는 상업주의의 물결을 타고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온 셈이다. 결과적이긴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식이 유럽식보다 못하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 무려 40여년을 사용했던 아날로그 TV방식을 디지털로 바꿔야 하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영화 같은 깨끗한 화질과 콤팩트 디스크(CD)와 같은 맑은 음질을 즐기려면 TV방송장비와 수상기 모두를 디지털 방식에 맞게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방송사에서 장비를 들여놓고 있으며 가전업체들도 디지털 TV를 활발히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부에서 TV방식을 유럽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정보통신부가 지난 97년 11월 디지털TV 표준방식으로 선택한 미국식(ATSC)이 유럽식(DVB)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디지털TV 표준을 미국방식으로 결정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먼저 디지털 TV가 엄청난 시장을 형성하는 만큼 산업에 미치는 효과를 참작했음직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TV 화질이었을 것이다. 정부도 미국식을 표준으로 정한 이유로 화질의 선명성을 들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면 문제는 커진다.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유럽 방식이 미국 방식보다 화질뿐 아니라 이동체에서의 수신도 등 거의 대부분의 성능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표준을 한번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아날로그 방식을 수십 년 동안 사용해 왔듯 디지털 TV표준도 한번 정하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까지는 첫 단추를 끼우는 단계이긴 하지만 이미 정한 표준을 바꾸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을 바꾸는 데 드는 비용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엇갈리는 방송사나 관련업계의 이해를 조정하기도 만만치 않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방식변경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디지털TV 표준을 바꾸느냐 마느냐가 한창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그것에 앞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정한 표준이 최선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선택한 표준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면 정부는 그것을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다. 덮어둔다고 해서 잠복해 있는 의구심의 불씨가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더욱이 기술이라는 것이 진보하고 정부가 택한 표준도 이미 3년 전의 결정이니 만큼 그후 지금까지 많은 변수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따라서 정부는 지금도 미국식이 유럽식보다 우수하다면 그것을 국민에게 다시 한 번 보여주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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