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iztoday.com=본지특약]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다. 일자리는 비록 잃었지만 일할 기회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아무리 해보고 싶어도 정작 들어갈 직장이 없다면 그만큼 불행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올해 졸업한 실리콘밸리 지역의 대학생들이 바로 그런 처지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대학에서 IT관련 학위를 딴 학생들조차 여기저기 둘러봤자 졸업장을 써먹을 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처럼 열악하다보니 전공과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도 있다. 또 공부나 하겠다며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스탠퍼드대학(stanford.edu)에서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다 지난 6월 졸업한 대니 칸(22)은 “계속 취직을 못하다보니 모든 일에서 자신감을 잃었다”고 털어놓았다.
칸이 의기소침한 것은 당연하다. 칸은 스카우트를 제의한 여러 업체들을 놓고 줄타기를 하다가 스톡옵션에 보너스까지 두둑이 챙기면서 취직한 선배들처럼 보란 듯이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취직하고 싶었으나 취직은커녕 졸업하자마자 실직자 신세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력서 발송은 기본이고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가며 몇달씩이나 IT관련 업체들에 명함을 내밀었으나 연락이 온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IT업계에서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뼈저리게 확인한 칸은 이제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동안 저축한 돈과 부모님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칸은 “졸업장을 써먹지 못해 화가 난 것은 아니다”라며 “이제는 독립을 해 어떤 일이든 찾아서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칸은 최근 입시교육기관의 강사 채용에 응시해 면접을 치른 상태다.
직업알선업체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challengergray.com)의 존 챌린저 최고경영자(CEO)는 “취업 수요가 닷컴 열풍이 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 워낙 대조적이어서 올해 졸업한 학생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더욱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챌린저 CEO는 “이제 과거처럼 골라서 취직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직장생활을 대학교육의 연장으로 여기며 졸업 후 별 어려움 없이 취직하던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올해 졸업생들이 최악의 상황”이라며 “과거의 화려했던 닷컴 시절은 잊어버리고 좀 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대학고용주협회(naceweb.org)가 최근 발표한 취업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미국기업들이 계획하고 있는 대졸자 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19.7%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실리콘밸리 지역의 경우 거세게 몰아치는 감원한파로 인해 대학생들의 취업전망이 더욱 어두운 것으로 지적됐다.
캘리포니아주 고용개발국(www.edd.cahwnet.gov)에 따르면 지난해 2월에서 올 10월 사이 샌타클래라 카운티에 있는 하이테크 업체에서 사라진 일자리만도 전체의 5.8%에 해당하는 2만2400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주 정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월 6%를 기록했던 샌타클래라 카운티의 실업률은 한달만에 0.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0월의 실업률 1.6%에 비해 무려 4배나 높은 수치로, 샌타클래라 카운티에 등록된 구직자만도 10월 현재 6만6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최근 대학을 졸업한 데이브 윈스타인(22)은 일자리를 구할 엄두도 못내 구직등록조차 하지 않았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윈스타인은 4학년 때 디지털 사진기 디자인으로 교내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차지할 만큼 디자인 분야에 상당한 소질을 갖고 있던 학생으로 이를 인정받아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트릴로지(trilogy.com)라는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일자리 제의가 들어왔다.
트릴로지가 윈스타인 자신은 물론 부모에게까지 선물을 선사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하는 바람에 윈스타인은 이 당시 하루하루가 꿀맛같았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에도 불황의 한파가 닥치자 트릴로지는 채용계획을 백지화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리드 바이럼 트릴로지 대변인은 올해초 불경기에 대응한 경비절감 차원에서 전체 인력의 15∼16%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윈스타인뿐만 아니라 많은 예비사원들의 입사계획이 취소됐다고 설명했다.
바이럼 대변인은 “올해초에 비해 회사 사정이 호전돼 다시 충원을 하고 있지만 전문인력이면 몰라도 신입사원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큰 상처를 입은 윈스타인은 취업을 포기하고 다시 학업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따라 윈스타인은 올 가을부터 스탠퍼드대학 경영과학 및 엔지니어링 박사과정에 등록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새너제이주립대학 취업센터(careercenter.sjsu.edu)의 준 림 부소장은 “일자리는 분명 있지만 1년 전만 해도 잘나가던 업체들이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며 “눈높이를 낮춰야만 한다는 현실이 학생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너제이주립대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코아 응웬(25)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이에 대비하는 경우다.
그는 “당장은 전공에 맞는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며 “전공을 살릴 수 없다면 차라리 다른 분야의 일자리라도 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프레몬트드브라이공과대학(beta.fre.devry.edu)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존 산토스(21)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눈을 넓혀 지하철운영기관 BART(bart.gov)와 주택건축설비 판매업체 홈데포(homedepot.com)에 지원할 계획이다.
산토스는 “전공과는 관련이 없지만 그곳도 엄연한 직장”이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중”이라고 말했다.
취업을 포기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스탠퍼드대학의 윈스타인은 학업재개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내년 6월 박사과정을 마치자마자 일할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윈스타인은 내년 7월부터 덴버에 있는 음성데이터 업체 퀘스트커뮤니케이션스(qwest.com)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마이클최기자 michael@ibiztoday.com>
국제 많이 본 뉴스
-
1
"비트코인 오르려나"...美 트럼프 주최로 7일 첫 '가상화폐 서밋' 개최
-
2
아이폰 17e, 내년 2월 나오나...오늘 '아이폰 16e' 한국 공식 출시
-
3
“바다에서 '에일리언 머리' 건졌다”… SNS 화제 생물은
-
4
중국 달군 '칼군무 로봇'의 습격...관람객에 돌진
-
5
中 독거노인, 12년간 자신 돌봐준 이웃에 모든 재산 상속… “자식보다 낫다”
-
6
손주랑 놀이공원 갔다 '꽈당'… 104억 배상 받는 美 할머니
-
7
피해액만 2조원… “北 가상화폐 해킹, 국방예산 규모”
-
8
렌즈 끼고 수영한 美 여성… 기생충 감염돼 '실명'
-
9
“아메리카노 X→캐나디아노 O”...반미감정에 음료 이름까지 바꾼 캐나다
-
10
태국, 외국인 관광객에 관광세 도입한다… “입국 시 1만 3000원”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