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컴퍼니>IT업계 와이키키 브라더스 2인

 젊은 시절, 음악을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밤늦도록 라디오에서 자기가 신청한 노래가 나오길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추억.

 친구들과 둘러앉은 모닥불 앞에서 어쭙잖은 기타반주에 맞춰 목청을 높이던 기억마저 없는 사람은 꽤 불우한 삶을 살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30대를 넘어선 보통 직장인에게 젊은 날의 음악적 경험은 어쩌다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추억의 노래, 먼지 쌓인 몇 장의 레코드판으로 상기될 뿐 고달픈 세상사에 묻혀 기억 저편에 묻혀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미디어솔루션의 임용재 사장(40)과 동양에레베이터의 장정훈 영업팀장(41)에게 음악이란 아직도 인생의 중요한 축이요 미래의 희망이다.

 임 사장은 고교시절부터 학교에 소문난 음악광이었다. 청계천 뒷골목을 누비며 2000여장의 복사음반(일명 백판)을 모으느라 끼니 거르는 일은 예사였고 대입시험을 앞두고도 음악다방에서 친구들과 그룹사운드를 만드는 생각에 골몰했던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재수를 거쳐 대학에 들어간 그는 그룹사운드를 이끌면서 음악적 끼를 마음껏 발산했으나 연이은 학사경고로 결국 학업을 중단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한동안 춥고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한국에서 딴따라는 밥굶기 딱 좋은 직업이란 생각을 했죠. 독하게 마음먹고 음악을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 다시 대학에 들어간 임 사장은 음악에 대한 모든 열정을 컴퓨터와 비즈니스에 쏟아부었고 지금은 알짜배기로 소문난 국내 제일의 키오스크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임 사장이 음악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요즘도 술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좌중을 압도할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마음이 맞는 음악친구들과 가끔씩 코드를 맞추기도 한단다.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국내 굴지의 음반기획사에 선뜻 거금을 투자해 40% 지분을 확보하기도 했다. 넌지시 이유를 물어보니 먼 훗날 자신의 음반을 발표할 때 도움이 될까 싶었다고 호탕하게 웃는다.

 “음악, 때려 치우길 잘했죠. 이젠 경영인으로서 나의 모습에 만족합니다.” 

 음악이 미래의 희망인 임 사장과 달리 동양에레베이터의 장정훈 팀장에게 음악은 현재 진행형의 삶이다.

 장정훈씨도 어린 시절 트윈폴리오를 동경하던 음악광이었으나 경찰 공무원인 아버지의 반대로 끝내 음대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상대에 입학한 그는 포크기타 듀오를 결성해 80년 강변가요제, 국풍 81, 81년 MBC대학가요제 등에 나가서 음악적 실력을 뽐냈다. 나중엔 이종환씨가 진행하던 명동의 음악카페 ‘쉘부르’에 불려다니고 TV 출연 제의도 곧잘 들어왔다.

 이렇다 할 히트곡을 남기지 못한 대부분의 가수가 그렇듯이 장정훈씨도 대학졸업 후엔 평범한 사회인의 삶을 시작했다.

 지금 그는 연간 200억원대의 승강기를 판매하는 영업일을 맡아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회사에선 젊은 시절 음악경력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장정훈씨는 회사생활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음악에 투자하며 즐거운 인생을 보내고 있다.

 교회 오케스트라에서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지휘하고 색소폰, 하모니카, 피아노까지 직접 연주하느라 주말에 쉬어본 적이 없다는 그는 평일근무 후에도 교회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까지 다니고 있다.

 장정훈씨의 내년도 소망은 요즘 유행하는 전자바이올린을 직접 배워 새로운 형태의 첨단 고스펠송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그다지 행복하지 못합니다. 음악을 평생의 취미로 삼게 된 것이 오히려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경영인과 샐러리맨의 차이라고나 할까, 두 사람 모두 음악을 사랑하지만 실제 삶에서 음악을 대하는 자세는 상당히 다르다.

 최근 삼류밴드의 애환을 담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란 영화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어린 시절 음악을 사랑하던 순수한 주인공들이 차츰 꿈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묘사한 이 영화는 30, 40대 관객들로부터 갈채를 받고 있다.

 적어도 임용재씨와 장정훈씨는 영화 속의 주인공보다는 훨씬 행복해보인다.

 음악에 대한 가슴속 열정을 아직 버리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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