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깃털의 차이

 ◆서현진 인터넷부장 jsuh@etnews.co.kr

 상품의 질과 가격이 비슷한 헤어스프레이 상품A와 상품B가 있었다. 조건이 같은 상황인데도 A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마케터들이 여러 도구를 이용해서 분석해 본 결과, 소비자들의 균형을 무너뜨린 가장 큰 원인은 두 상품의 광고콘셉트의 차이에 었었다. 실제로 대중매체 광고에서 B는 ‘머리를 잘 잡아준다’를, A는 ‘머리를 부드럽게 잡아준다’를 각각 마케팅 상품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상품 생산 공정이나 마케팅 과정에서 보면 ‘잘’과 ‘부드럽게’라는 표현의 차이는 그야말로 깃털의 무게만큼이나 보잘 것 없는 것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무게’가 똑같은 상표를 천칭저울의 양 접시에 올려 놓았을 때, 저울은 평형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평형상태에서 만약 어느 한쪽 접시에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를 올려놓는다면 저울은 균형을 잃고 어느 한 쪽으로 기울고 말 것이다. 깃털의 차이, 그러니까 극히 그 뜻이 모호할 수밖에 없는 ‘잘’과 당대 소비자들의 패션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어낸 ‘부드럽게’의 차이가 헤어스프레이 시장에서의 성패를 가른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깃털이론’이다.

 깃털이론은 매체 광고효과를 측정하는 한 방법으로 회자되는 것이긴 하지만 한바탕 우리나라 인터넷업계를 휩쓸고간 거품론을 진단하는 데도 매우 유익한 도구가 된다. 얼마전 국내 벤처 투자가들이 모여 지난해의 인터넷 비즈니스 거품론을 진단하고 반성하는 세미나를 가졌는데 당시 창업자들에게서 발견된 공통적인 생각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고 한다.

 첫째 인터넷은 모든 것을 바꾼다. 둘째 자금은 널려 있으나 아이디어는 흔치 않다. 셋째 고객이 현재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충족시켜 주면 된다. 넷째 이런 모델은 아직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다섯째 전체시장의 1%만 점유해도 최소한 몇천억원은 거둬들일 수 있다. 우리의 예상치는 아주 낮게 잡은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런 생각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했던 창업자들은 지금 거의 살아남지 못했다. 세미나에서는 당시 창업자들의 환상을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공박하고 있다.

 첫째 인터넷은 모든 것을 바꿔놓지는 않는다(기본적인 것은 그대로다). 둘째 아이디어는 널려 있으나 자금이 없다(실현가능성이 낮은 아이디어들만 난무한다). 셋째 끊임없이 미래수요를 예측하고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한다(비즈니스의 기본적인 방법과 목표는 모두 똑같다). 넷째 유사 이래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것은 없다. 다섯째 수만명의 창업자들이 모두 ‘1%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의 인터넷비즈니스 거품론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세미나의 결론이다. 인터넷비즈니스가 아무리 새로운 분야라 하더라도 공인된 요소들로 상품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한다는 비즈니스의 기본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더욱이 인터넷비즈니스의 핵심 생산요소가 되는 인터넷기술은 이미 만인에 의해 구석구석 공개되고 입증된 보편적인 수단일 뿐이다. 또 누구나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인터넷비즈니스도 공인된 화학적 요소로 상품을 만들어 수익을 내는 헤어스프레이 비즈니스와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수만의 인터넷창업자들은 똑같은 아이디어로, 똑같은 유형의 비즈니스모델을 만들려다 똑같이 거품 속으로 사라진 신세가 된 셈이다. 거기에는 깃털만큼의 차이가 없었다. 이제는 더이상 신비하게 느껴지거나 숨길 게 없게 된 것이 인터넷비즈니스다. 인터넷세상이 보편화될수록 새롭고 새롭지 않은 것의 차이는 깃털 무게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깃털의 무게를 찾아낼 수 있는 지혜와 노력이 경주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