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노소동락 인터넷백일장>할아버지·할머니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차석(1)

제목:할아버지,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다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오지은

등 하교 길에 줄지어선 코스모스를 봅니다.

할아버지께 만져보시게 하고 싶습니다.

파아란 하늘에 하이얀 구름이 떠 있는 동화 속의 그림 같은 하늘을 봅니다.

할아버지께 보여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산처럼 계십니다.

싫으셔도 좋으셔도 큰 반응이 없으시며 기쁘셔도 슬프셔도 표현하지 않습니다.

늘 산처럼 큰 나무처럼 그렇게 계십니다.

저는 그런 할아버지가 참 좋습니다.

할아버지 가슴 속은 외부의 기온과 관계없이 우리 가족이 살아가기 좋을 정도로 항상 적당한 온도입니다. 그 따뜻한 가슴속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 위하고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할아버지께서 그런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긴 시간동안 결코 만만치 않는 길을 걸어오신 결실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가난한 집에서 1급 시각 장애자이신 할아버지께서 살아오신 길이 어떠했는지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알았을 때 그 모습을 상상해보니 가슴이 아려 왔습니다.

앞을 못 보시는 할아버지께서 할머니와 농사를 지으시고 산에서 나무를 해오시며 소와 염소를 키우셨다지요.

다른 형제들께 폐를 끼칠까봐 그렇게 밤낮 없이 노력하셔서 어머니와 외삼촌, 이모를 키우고 공부를 가르쳤다고 어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십니다.

보통 사람들은 눈감고는 도저히 못하는 일을, 믿기조차 어려운 일을 할아버지께서는 60년 동안 해 오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언제나 긍정적이십니다.

“같은 환경과 조건에 처해 있다해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진다”고 하셨지요.

이제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가슴이 왜 바다처럼 넓고 깊은지, 따뜻한지, 남을 잘 배려하시고 잘못을 잘 용서해주시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12월 달 외삼촌께서 외숙모를 데려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며 식구들께 인사를 시키던 날 할아버지께서는 일곱살인 저에게 외숙모가 어떻게 생겼느냐시며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때 제가 본 느낌대로 “머리가 길 구요, 키가 엄마보다 크구요, 날씬 하구요, 나무 색 긴치마를 입었고 얼굴이 오이처럼 길어요” 하고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 제게 물으시는 할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몇년의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며느리 감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을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시려니 멋적어서 어린 저에게 물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때가 중학교 1학년 때이니 6년의 시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너무 미련스럽지요?

그 후로 할아버지가 궁금하실 것 같아서 모든 것을 설명 드립니다.

“저의 학교는 산 중턱에 있어서 눈이 올 때 미끄러워서 기듯이 올라가야 하구요 비둘기가 많은데 수업시간에 교실에도 들어오고요, 담임선생님께서는…” 하면 “응, 그래” 하셨습니다.

외삼촌께서 차를 새로 샀을 때도 “차 이름은 쏘나타 투고요, 색깔은 회색이고 의자는 검은 가죽으로 되어 있는데…” 그러면 할아버지께서는 듣지도 않는 듯이 가만히 계시다가 제 말이 끝나면 “길이는 어느 정도 되냐?”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갑자기 울컥해지는 목을 잠깐 가다듬어 “할아버지 두팔을 벌린 것에 두배만큼 될 것 같아요” 했습니다.

어떤 책에서 ‘우리는 살면서 어떤 시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가슴 저릴 때가 있다’라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이 구절은 할아버지가 살아오신 것을 생각해 볼 때의 제 마음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게 힘이 있다면 할아버지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을 할아버지께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사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은 모양은 설명할 수 있고 만져 보시면 되겠지만 색깔은 어떻게 말씀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노랑색, 빨강색을 말씀드려도 할아버지께서 그 색깔의 느낌을 모르실 테니까요.

저는 어른이 되면 제일 먼저 차를 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고 싶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시각 장애자들은 볼 수가 없으니까 여행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분들도 여행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제게 살아가는 방법을 몸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인내와 사랑, 의무와 책임, 환경에 굴하지 않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가는 성실한 노력, 그 모든 것을 제가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입니다.

몇개월만 있으면 고3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없습니다.

할아버지의 외손녀답게 잘 해나갈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제 마음속에서 항상 저를 지켜주시고 계시니까요.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의 그 정신을, 그 마음을, 그 여유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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