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의 젖줄은 다시 돌아오는가.
정보기술(IT) 경기의 침체와 함께 꽁꽁 얼어붙은 벤처투자시장에 조금씩 온풍이 감돌고 있다. 바닥으로 치닫던 코스닥시장이 최근 고개를 들고 정부의 벤처투자재원 조성 의지도 다시 확인되고 있다. 또 수면 아래 있던 벤처캐피털들이 다시 벤처투자조합 결성에 적극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벤처기업들로서는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벤처투자시장은 지난해와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올들어 투자재원 마련은 물론 투자 회수, 신규투자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 이로 인해 벤처캐피털의 수익도 크게 감소, 악순환의 고리가 연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대두됐다. 메이저급 벤처캐피털은 지난 상반기 중 전년 동기 대비 70∼80% 정도씩 순이익 감소를 겪었으며 소형 창투사들은 대부분 순이익이 1억∼2억원대에 불과하거나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달 초 김대중 대통령이 벤처기업 전국대회 개회식에 참석해 벤처지원 의지를 밝히는 등 정부의 벤처투자 촉진 움직임이 되살아나고 있다. 특히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투자확대를 위해 각종 기금을 통해 연말까지 총 5000억원 규모의 벤처투자재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벤처업계에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또 최근 벤처투자조합에 대한 민간 투자자금 유입이 줄어들면서 투자재원 조성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한 조치로 풀이돼 벤처캐피털의 의욕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는 현재 활용 가능한 정부의 연기금 등에서 2610억원을 조속히 투입, 벤처투자조합 결성을 촉진할 예정이다. 또 원활한 투자조합 결성을 위해 투자조합에 대한 출자 조건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특히 창업투자회사의 특정분야 의무투자비율을 현행 70∼100%에서 60%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이 같은 조치와 함께 벤처캐피털의 펀드 결성과 벤처기업 투자도 활기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지난달 창업투자회사와 신기술금융회사들의 벤처펀드 결성은 KTB네트워크 370억원, 기보캐피탈 250억원, 무한기술투자 100억원, 드림벤처캐피탈 14억원 등 4건, 734억원에 달했다. 이는 9월의 3건, 196억원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며, 지난 5월 이후 월별 벤처펀드 결성 규모 중 가장 큰 것이다.
특히 11월과 12월에는 정부 출연자금 집행으로 투자조합 결성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중기청 관계자도 대규모 정부자금 투입과 벤처캐피털들의 펀드 결성 재개로 투자조합 결성 건수와 금액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대다수 벤처캐피털의 지난달 평균투자실적이 지난해의 20∼30% 수준에 머물렀지만 산은캐피탈·LG벤처투자·우리기술투자 등 일부 벤처캐피털들은 지난해 수준의 투자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183건, 963억원을 투자한 산은캐피탈의 경우 지난달까지 123건, 700억원을 투자해 연말까지 지난해 수준 이상의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LG벤처투자도 지난해 투자실적(69개, 744억원)의 40% 수준인 31개 업체에 300억원을 투자했으며 연말까지는 지난해의 절반 이상을 투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KTB네트워크·한국기술투자·무한기술투자 등 선발 벤처캐피털들도 최근 본격적인 투자조합 결성에 힘입어 투자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벤처거품론 이후 썰물처럼 빠진 개인투자자들도 벤처캐피털의 투자조합 공모에 대거 몰리고 있다. KTB네트워크와 한국기술투자가 최근 잇따라 일반공모를 실시, 성공을 거뒀으며 이에 고무된 다른 벤처캐피털들도 공모 여부를 신중히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점도 한국 벤처산업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9월 이후 미국·캐나다·유럽·일본·홍콩을 비롯한 선진국 벤처캐피털의 국내 시장 진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 8일 방한한 캐나다의 세계적인 투자자문사 CDP아시아인베스트먼트의 장 라모드 사장은 “불황이 반드시 나쁜 뉴스는 아니며 장기 성장 전망의 사인만 있다면 불황은 투자를 조성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큰 폭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새롭게 설 수 있다는 징후가 국내외의 평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흘려 버려서는 안될 교훈이 있다. 우선 호황에 편승,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거품 논쟁을 다시는 불러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또 국내 벤처캐피털산업의 국제화가 아직 멀었으며 올바른 투자 문화의 확립도 시급한 문제다.
이런 점에서 주요 벤처캐피털의 자발적인 구조조정 움직임과 코스닥시장의 제도 개선, 직접 개입보다는 벤처캐피털을 통한 간접투자에 나서고 있는 정부의 태도 변화 등은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 기초부터 착실히 다져야 할 시점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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