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기업 네트워크화 사업>풀뿌리 e비즈 새 세상을 열어라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 상가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 부부. 몇년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 삶을 시작한 지 2년이 다 돼 가는 이 부부는 이제 나름대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로 악착같이 매달린 덕분에 지금 소득은 월급쟁이 생활보다 한결 여유있다. 얼마 전에는 살던 전세집에서 나와 내집 마련의 꿈도 일궈냈다.

 하지만 무엇이나 그렇듯 혜택에는 반드시 대가도 따르는 법. 이씨 부부는 지난 2년간 두 자녀를 거의 돌볼 틈이 없었다. 아이들은 온종일 유치원과 탁아소 신세를 지는가 하면, 부부에게도 자신들의 생활이란 없었다. 매일 새벽까지 반복되는 가게 운영에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됐다. 비록 구멍가게지만 그것도 사업체라고 운영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던 탓이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원재료를 조달해주지만 나머지는 전부 이들의 몫이다. 서비스로 승부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신선한 부재료도 직접 챙겨야 하고 물건 파는 일 외에도 장부정리나 회계관리, 세무신고 등 부대업무가 계속 쏟아진다. 게다가 요즘에는 주변에 치킨집이 늘어나면서 고객 유치도 쉽지 않다. 직접 다리품을 팔면서 광고전단을 돌리기도 하고 인근 지역 주민들의 생활상도 살펴보면서 아이디어를 짜내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힘들어질 것만 같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부부는 정보화로 ‘제2의 창업’을 꾸려기로 했다. 당장 다음달에는 인터넷과 기본적인 판매시점정보관리(POS), 온라인 세무·회계 프로그램이 가능한 PC를 구입해 가게 운영의 부대업무를 맡겨볼 참이다. 본사나 거래처, 고객응대 등 모든 대외 채널을 음성전화에 의존했던 것도 외부의 인터넷콜센터나 전자우편으로 해결해 잡일과 비용을 줄여볼 생각이다. 또 수시로 생기는 자투리 시간에는 인터넷을 검색해 외식업종의 다양한 마케팅 아이디어와 영업전략을 얻어보기로 했다. 부가적인 일과 비용을 줄여 가게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한다. 정체 상태에 이른 매출을 한단계 끌어올리려는 노력은 대기업·중소기업만의 몫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이씨 부부의 사례는 국내 기업 정보화 환경이 이제 ‘풀뿌리’ 단계로 확산돼야 함을 시사한다. 290만개로 추정되는 수많은 소기업·자영업자는 수적으로는 국내 기업체 가운데 99%다. 소규모 외식업소에서 미용실, 전문용품점, 슈퍼마켓, PC방, 자동차수리점, 안경점 등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와 재화라면 업종 불문하고 수백, 수천가지의 사업장이 존재하고 있다. 비록 개별 사업장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들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지대하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 영세사업체는 정보화의 사각지대나 다름없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프랜차이즈도 가맹점마다 POS를 갖춘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화와 금전등록기가 이들이 의존하는 기업경영 수단의 전부였던 셈이다.

 정보통신부와 117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이달부터는 추진하는 ‘소기업 네트워크화’ 사업은 정보화의 무풍지대였던 이들 자영업체들이 사실상 기업경영의 틀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첫 프로젝트다. 인터넷이 생소했던 일반인들에게 국민PC가 네티즌 대중화의 단초를 제공했다면 이번 사업은 국내 산업계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소기업에 정보화의 뿌리를 내리자는 취지다. 한마디로 동네 구멍가게가 ‘기업’의 모양새로 탈바꿈하는 기회인 것이다.

 이같은 사업으로 인한 혜택은 당사자인 소기업 만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올 들어 극심한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IT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업의 정부 지원금은 120억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대부분 자영업자들의 정보화 교육에 활용되므로 서비스 사업자의 몫은 아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대기업과 일반인들이 정보화의 대세에 동참하던 사이 소리없이 소외돼 왔던 영세사업장이 새롭게 주목받는다는 점.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기업이 새로운 IT 수요기반을 촉발할 수 있는 잠재력은 지닐 것으로 보인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최고라는 평가에 걸맞게 ADSL 등 통신기반의 수요확충은 당장 예측할 수 있는 효과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정보화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영세사업장은 세금·보험·연금 등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할 각종 사회기금을 탈루해왔던 주범. 정보화를 통해 온라인 세금·보험료 서비스가 확산된다면 봉급생활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사회적인 역차별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자영업자들의 세원이 투명하게 관리된다면 국가 세수확보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이같은 기대효과는 역시 만만치 않은 저항에 현실화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소규모 사업장들이 정보화를 기피해 온 가장 중요한 배경 중의 하나기 때문이다. 한때 포인트 적립 서비스가 일반인들을 파고 들면서 미용실 등에서도 마일리지 카드를 발급했다가 세원 노출의 우려 때문에 다시 없애버린 사례들은 이같은 현실의 단면이다.

 이에 따라 소기업 정보화 사업의 성패는 영세 사업장들에게 세원 노출과 정보서비스 도입 비용 이상의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정보화의 대의를 설파하더라도 하루벌이에 연명하는 이들에게 실제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할 경우 비용만 지불하는 액세서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통부의 이번 사업에 한국통신·두루넷·하나로통신 등 굵직한 통신사업자들이 주관하고 있지만 100여개에 달하는 분야별 전문업체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이같은 취지에서다. 또한 정통부가 가정에서 사용하는 ADSL 요금(전화료 포함)과 비슷한 수준의 월 5만원 안팎에 모든 서비스를 제공토록 한 점도 이런 이유다.

 첫 시도인 만큼 대의와 기대효과, 다양한 혜택에도 불구하고 소기업 네트워크화 사업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하루가 멀다하고 문을 닫거나 우후죽순 생겨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영세사업장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또한 지금까지 정보화와는 담을 쌓고 지내온 그들에게 도대체 어떤 혜택을 얼마나 줘야 동참할 수 있을지 해답이 없다. 다만 시대적 추세에 동감하는 일부 사업장이라도 뜻을 같이한다면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소중한 실험이 될 것이다.”

 이번 사업을 기획한 정통부 담당관의 고백에서 소기업 네트워크화 사업의 희망과 비전을 찾아본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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