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분당에 거주하는 늦깎이 인터넷 마니아 K씨(59). 지난해 12월 자택에 초고속인터넷을 설치하고 사이버 공간을 처음 접한 그는 올들어 관련 서적과 각종 강의를 통해 이제 20대 못지않은 ‘인터넷 서퍼’가 됐다.
그러나 K씨는 인터넷 서핑으로 느끼는 즐거움이 예전만 못하다고 말한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신문·잡지·각종 모임·채팅 등 처음 접해보는 모든 콘텐츠에 흥미를 가졌으나 이제는 즐겨찾는 사이트 몇곳만 방문할 뿐이다.
K씨는 “정보를 얻으려고 언론사 및 정치인의 게시판에 들어갔으나 건전한 비판이나 토론은 없고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만 난무해 더이상 찾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한번은 온라인 바둑사이트에서 20대 젊은이와 대국을 하던 중 세가 불리해진 상대가 갑자기 욕설을 하며 나가 버리는 일을 겪기도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젊은층이 주로 모이는 사이버 공간에는 아예 가지도 않게 됐다고 말한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K씨는 친구들에게 인터넷을 알리는 사이버 전도사 역할을 자처했으나 이제는 더이상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무례함과 무질서가 판치는 사이버 공간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K씨의 불쾌한 경험은 비단 K씨만 운이 없어서 겪었던 것은 아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치르는 ‘통과의례’다.
이처럼 사이버 공간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계층을 넘어선 정보문화 확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건전한 사이버 토론의 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던 네티즌은 이제 언론사 게시판이나 정치인들의 토론 광장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근거없는 비난과 욕설이 난무할 뿐 건전한 토론 문화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토론 공간을 악용해 이익을 보려는 소수가 게시판을 자신들의 견해로 이른바 ‘도배’해 건강하고 균형있는 여론 형성을 막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사이버 공간에 막 입문한 사람들은 건전한 여론 형성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
인터넷 게임, 채팅 사이트에서는 초면부터 존칭을 생략하고 경칭을 사용하는 문화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게임 및 채팅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반말을 하고 이 문화에 동참하지 않으면 욕설을 내뱉으며 강제로 추방시킨다.
약어, 약물의 남용도 문제다. 인터넷에 익숙한 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약어들이 남용되고 있다. 약어 및 약물은 대화를 매끄럽게 하는 수단일 수 있으나 지나친 사용은 초보 사용자를 몰아내는 장벽이 된다.
인터넷 접속 자체도 힘겨운 초보자들에게 10대 위주의 암호화된 약어·약물은 커다한 심리적 압박으로 느껴지며 이들은 결국 소극적 사용자가 되기 십상이다.
이런 문화 때문에 인터넷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인터넷에 싫증을 내고 떠나가고 있으며 10대 초반의 인터넷 이용자들은 저속한 문화를 인터넷 문화 전부인양 받아들이고 있다.
사이버상의 부정적인 문화 확산은 결국 초보 사용자와 미래 사용자들을 배척해 냄으로써 정보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보통신부 정보이용보호과의 홍진배 사무관은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방 문화와 끼리 문화가 인터넷 초보자들에게는 하나의 벽으로 작용한다. 또한 아무런 제재없이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는 음란물도 인터넷의 올바른 문화 정착을 가로막고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지난 99년 설립돼 사이버 문화 개선을 위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는 사이버문화연구소(http://www.cyberculture.re.kr)의 민경배 소장도 “이제 막 인터넷에 입문한 사람들에게 현재 인터넷 문화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많다”며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인터넷상의 그릇된 문화는 사실상 법적인 규제가 불가능하다. 채팅방에서 상대방에게 욕설을 내뱉는 것을 일일이 감시할 수도 없고 이를 적발했다고 해서 영원히 인터넷 세계에서 추방할 수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적인 계몽과 교육을 통해 이러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민 소장은 “현재 비정상적인 인터넷 문화는 그동안 국내 정보기술(IT) 교육이 하드웨어 위주로 이뤄져 컴퓨터 활용능력에 비해 인터넷 문화 수준이 뒤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IT교육 초기단계부터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올바른 문화를 인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교육과 함께 인터넷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 주요 PC통신 및 인터넷 동호회 가입자들을 중심으로 잘못된 인터넷 문화를 되돌리려는 노력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정부나 기업들이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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