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생존을 위한 지혜

 길가의 나무들이 물들고 있다. 가을은 깊어만 가는데 세상은 우울하다. 국내에서는 연일 비리사건이 터지고, 해외에서는 미국 테러에 이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공격과 탄저병 공포로 떨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는 더 불투명하기만 하다. 매년 이때쯤이면 떠들어대던 연말특수도 실종된 것 같고, 수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기업하는 사람들이 언제 한번 마음 편히 자본 적은 없겠지만 요즘은 그야말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라는 어느 사장의 하소연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쓰리게 한다. 경영자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연말을 견뎌야 한다며 좌불안석이다. 일각에서는 IMF 때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들다며 생존을 걱정한다.

 신경제의 축이던 IT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거품이 빠지는 단계라고는 하지만 가을 들어 벤처1세대인 메디슨의 이민화 회장을 비롯해 한글과컴퓨터의 전하진 사장 등 내로라하는 IT업계의 CEO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CEO들의 사퇴가 매출부진과 이로 인한 ‘과감한 구조조정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하니 IT업계의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떠나는 자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또다른 기대를 하니, 겨울을 지내는 나무의 지혜를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의 가지치기, 즉 전정(剪定)의 의미.

 전정이란 수목의 생장휴지기인 늦가을부터 초봄 사이에 실시하는 것으로 나무에서 가지를 솎고 잘라서 매년 안정적으로 과실을 생산케 하며 품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성장은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다. 유기체에게-수목이든 기업이든-자라나는 일은 아주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다. 역설적으로 제 신체의 일부를 잘라냄으로써 더 크고 탐스러운 결실을 맺기도 하니 이것이 성장의 비용인 셈이다. 유기체가 자라날 때 모든 부분이 똑같이 크는 경우는 없다. 실은 불필요한 부분들을 없애고 필요한 부분들을 새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늘 따른다.

 지금 하강곡선을 그리는 IT기업들도 성장의 고통을 겪고 있음을, 그 고통을 이겨낸 기업만이 제2의 IT 르네상스를 맞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얼마 전 제너럴일렉트릭(GE)사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김대중 대통령과 재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한 발언들은 희망적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디지털화한 시장 중 하나다. GE는 한국에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연이어 한국을 찾은 HP의 칼리 피오리나 회장도, 엊그제 방문한 MS의 빌 게이츠 회장도 IT산업의 미래를 낙관한다. IT산업이 가야 할 길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는 빌 게이츠 회장은 앞으로 1년 안에 인터넷 거품이 완전히 제거돼 효율적인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세계 경제는 침몰 위기가 아니며 거대한 변화는 적어도 5년 이상 걸린다는 거시적인 의견을 냈다. “그러나 호경기 동안 추진한 과잉투자와 그에 따른 정부정책의 무용성들이 심각한 문제”라고도 했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우리가 고개 숙이고 걱정하고 있는 사이 MS의 차세대 IT 시장 선점전략이 한국 시장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MS는 한국이 모바일·네트워크·방송 등 차세대 IT 상용화에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국내 주요 IT기업과 잇따라 손잡고 향후 세계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첨단기술 및 제품 개발·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 제2의 IT 르네상스가 온다고 예견한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제2의 르네상스는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도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IT기업들은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견뎌야 하고 생존을 위해 현명하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모두들 인터넷을 말하다 조용해졌지만 지금도 인터넷 이용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그들이 IT기업의 잠재소비자들이다. 어렵지만 길가의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가지를 잘리우고도 처연히 겨울을 견디는 인내를 배우자. 전정은 수목에게나 기업에게나 올바른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생존을 위한 자연의 지혜. 이 또한 계절에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다.

 <고은미 기획조사부장 emk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