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컴팩 합병-`장밋빛`이 `잿빛`으로

   

 HP의 컴팩 인수가 정보기술(IT)주에 악재로 작용하는 것인가.

 노동절 연휴로 하루 늦게 개장된 나스닥시장은 4일(현지시각) HP의 컴팩 인수합병(M&A) 소식에도 불구하고 지난주말보다 34.65포인트(1.92%) 떨어진 1770.78로 마감됐다. 전날 공식 확인된 HP와 컴팩의 ‘동거’가 별 이득이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오면서 HP의 주가는 18.14% 폭락한 19달러, 컴팩은 10.28% 급락한 11.08달러로 장을 마쳤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인텔, 시스코시스템스 등 대형주들도 기대를 모았던 ‘HP효과’가 악재로 바뀌면서 하락, 기술주의 하락을 주도했다.

 5일 국내 주식시장도 기술주의 약세반전으로 하락했다. 삼성전자 등 전날 국내 증시의 IT주 상승을 이끌었던 대형주들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가하면 전날 가격제한폭까지 상승했던 현대멀티캡 등 코스닥시장의 PC주들도 폭락했다.

 증권업계는 HP와 컴팩의 합병을 IT업계의 기대처럼 컴퓨터, 반도체, 이동통신 등 IT산업의 바닥탈출 신호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까지 불투명한 요소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안성호 서울증권 연구원은 “HP와 컴팩의 합병이 IT경기의 불황탈출 신호라기보다는 세계 2위 PC업체가 퇴출될 정도로 PC시장의 침체가 심각한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최근 도시바의 메모리사업 철수 등 IT산업 재편이 침체된 수요를 촉발시키는 요인이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또 HP효과로 반짝 강세를 연출했던 국내 PC주에 대한 영향도 미미하다는 분석이다. 국내 PC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수요와 수출부진인 데 비해 HP의 컴팩 인수는 수요 측면이라기보다는 공급 측면의 해결이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전날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던 현대멀티캡과 현주컴퓨터는 5일 각각

11.03 %, 5.32% 하락하며 전날의 상승분을 대부분 토해냈다.

 이번 합병의 수혜주로 부각됐던 삼보컴퓨터와 삼성전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나오고 있다. 삼보컴퓨터는 HP의 최대 주문자디자인생산(ODM) 방식의 공급업체로 지난해 HP에 대한 공급물량이 전체 매출의 29%를 차지할 정도로 HP와 컴팩 합병의 최대 수혜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전세계 20여개 업체를 통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및 ODM을 통해 제품을 공급받았던 HP가 최근 원가절감 차원에서 생산라인을 4개 업체로 축소할 것으로 발표하는 등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

 또 이번 합병이 PC업체간 과열경쟁으로 치달을 경우 삼성전자는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PC업체들의 가격 협상력이 커질수록 메모리 반도체업체들의 입지는 좁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HP와 컴팩의 합병이 ‘IT구조조정→바닥탈출→IT경기회복’의 선순환고리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PC 선도업체의 구조조정에 따른 가격하락 경쟁은 윈도XP 출시, 펜티엄4 업그레이드 등과 맞물리며 침체된 PC시장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대형 컴퓨터업체의 합병은 IT산업의 구조조정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신호라는 설명이다. 전병서 대우증권 연구원은 “HP와 컴팩의 합병은 반도체경기가 바닥권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올 4분기 정도면 PC와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IT경기가 바닥을 찍고 상승세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증권은 “HP와 컴팩의 합병으로 기술주가 모멘텀을 형성할 것인지에 증시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실적악화 등 IT산업을 둘러싼 국내외 불안한 요인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기술적 반등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단기적으로 낙폭이 커 가격메리트가 부각되는 낙폭과대 종목으로 투자를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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