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명성왕후와 디지털TV

◆오해석 숭실대 정보과학대학원장

 

 요즘 TV 드라마 중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사극 ‘명성황후’는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권력다툼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눈길을 더욱 끈끈하게 묶어두고 있다.

 대원군과 명성황후는 어림잡아 100년 전 인물들이다. 100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TV를 통해 시청하고 있다. 아직 디지털TV가 널리 보급된 것은 아니지만 시험방송중이고 오는 11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방송할 것이니 지금도 디지털TV 시대라고 너그러이 봐주고 넘어가 보기로 하자.

 우리 인간에게는 과거회상형·현재고수형·미래지향형·내세추구형 등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젊은이는 미래에 살고 늙은이는 과거에 산다고들 하였으나 이 말씀은 그야말로 옛날얘기고 요즘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인간은 네 부류 중 어디엔가 속하게 되어 있다.

 컴퓨턴가 통신인가 하는 기술을 다루는 우리네 무리들은 자칭 타칭 미래지향형에 속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가 좇고 있는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6개월이면 새로운 제품이 나오는 판에 과거타령이나 하며 엉덩이를 현실 안주라는 방석에 잠시라도 붙였다가는 밥 굶기 딱 십상이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기술이 튀는 방향을 생각하다 보니 미래지향적이 아니 될 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먹고 사는 방법을 궁리하는, 잘 나가는 모임의 하나가 ‘미래포럼’이기도 하다.

 내세추구형은 미래지향형과는 근본이 사뭇 다르다. 자신의 창의적 노력으로 내세를 개척한다는 생각은 꿈도 못꾸고 자신을 단순 피조물로 지레 단정하고 창조주이신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오로지 인생은 운명이 연출하는 드라마 정도로 알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바로 그네들이다.

 원시신앙으로 시작된 이 부류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발전되어 내세를 빌고 추구하는 생활상은 컴퓨터문명과 정보문화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그 맥을 이어갈 것이다. 비록 휴대폰이나 디지털TV의 애용자는 될지라도.

 현재고수형, 그들이 문제다. 사극 명성황후에서 보면 대원군의 퇴위를 마치 부자간의 인륜을 저버리는 처사라고 읍소하던 삼정승과 판서들은 가장 대표적인 현재고수형이라고 볼 수 있다. 성년이 된 왕이 친정을 시행하는 것은 당연 이치이거늘 자신들의 권력유지에만 급급하여 왕실의 미래, 나라의 미래, 백성의 미래를 생각해 볼 겨를이 그들에게는 없다. 최첨단시대를 대표하는 디지털TV 방송시대를 맞으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 ‘미래를 걱정하는 모임’으로 바뀌지나 않을까 노파심이 솟구친다.

 OECD 가입국, 일인당 GNP 1만달러, 인터넷 사용자 2000만명, 휴대폰 가입자 2800만명, 1만개의 벤처기업 육성, 300개의 세계 1등 상품개발 등 우리 미래의 하늘은 이글거리는 태양과 함께 붉게 타오르고 있다.

 TV에 비친 명성황후 출연자들의 의상을 현대식 양복으로 갈아입혀 본다고 상상해 보자. 대본도 약간 손질해 보자. 100년 전이라 생각하지 말고 오늘날이라고 우겨보자. 드라마 방영시간이 앞당겨져 밤 9시 뉴스 시간으로 착각하지나 않을까.

 100년 전이나 100년이 지난 지금이나 수중의 권력 고수에만 열중하는 그분들, 그분들에게 미래는 어떤 색깔로 보일까. TV 속이 아닌 TV 밖에서 과거타령이나 하며 살아가는 과거회상 타입의 무리 속에서 그네들을 볼 수 있는 날이 먼 미래가 아니길 고대한다.

  oh@computing.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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