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요? 리듬을 타야지요. 투자 자체도 잘 짜여진 교향악의 선율과도 같은 작업입니다.”
금융업 중에서도 최신 금융산업으로 통하는 벤처캐피털업계에서 음악이나 미술 등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어디에도 이단아(?)는 있게 마련.
IMM창투의 김지훈 사장(34)과 하나은행 벤처투자팀의 안태형 심사역(33)이 그들이다.
김지훈 사장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10여년간 연주해온 플루트 수준급, 안태형 심사역은 자작곡으로 유명 가요제에 입상했던 경력을 갖고 있을 만큼 자타가 인정하는 재능을 갖고 있다. 이들은 또 전자업계에서 실력을 키웠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실 수에 밝은 사람이 예능분야, 특히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전문분야에 대한 심사능력뿐만 아니라 경제를 읽는 안목을 갖춰야 하는 벤처투자 분야는 더욱 그렇다.
IMM창업투자의 김지훈 사장은 플루트 실력은 물론 클래식, 재즈, 가요 등 음악에 대한 조예가 대단한 수준이다. 고등학교 첫 음악시간에 흘러나오는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중 미뉴에트’를 듣고 그 소리에 반해 바로 플루트와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 이후 고등학교 3년을 비롯해 인생의 힘든 시기에는 항상 플루트가 김 사장 곁에서 힘든 생활의 벗이 되어 주었다.
지금도 퇴근 후에는 플루트를 연주하며 하루의 피로를 달래기도 하고, 사무실에서도 가끔 악보를 펼쳐 놓고 멋진 연주 모습을 그리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가장 즐겨 연주하는 곡은 ‘셸부르의 우산’ 등 영화음악이다.
“아마추어라 단품밖에 연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몇 가지 목표 중 하나가 아를르의 여인중 미뉴에트를 완주하는 것입니다.” 소박한 아마추어 음악가의 작은 소망이다.
사실 김 사장의 이력은 음악과는 차이가 많다.
서울대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진학, 6개월 만에 중퇴했다. 김 사장이 말하는 중퇴 이유는 “공부를 계속할수록 적성에 맞지 않는 것같아 다른 쪽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으로 유학가 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서 MBA과정을 밟았다. 이후 귀국해 3년여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에서 재무, 회계, 해외마케팅, 해외 M&A 추진, 신규사업 기획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여기서 투자업무에 대한 감각을 익힌 김 사장은 당시 IMM창투 이사로 자리를 옮겨 초기 설립 작업을 준비했고 잠시 관계사인 IMM자산운용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지난 2월 친정인 창투부문 사장으로 복귀했다. 전공이 분자생물학이었던 만큼 앞으로 BT분야로 IMM창투의 투자영역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좋아하는 곡 하나의 연주를 마스터했을 때 얻는 기쁨을 성공한 벤처를 만들어 가며 얻고 싶다는 게 김 사장의 생각이다.
김 사장이 처음부터 취미로 음악을 접한 반면 하나은행 안태형 심사역은 가수의 꿈도 가졌던 준 프로급이다.
안 심사역은 주변에서 이야기하듯 0.1톤의 거구다. 이런 거구의 외모에서 어떻게 그런 목소리가 흘러나올 수 있는지 주변 사람들은 그가 가끔 들려주는 노래소리를 들으면 한동안 말을 이을 수가 없을 것이다. 기자도 취재차 방문한 자리에서 들려준 MP3플레이어에 담긴 노래를 듣고는 적이 놀랐다.
안 심사역은 대학교 3학년때인 지난 90년 제2회 유재하 가요제에 자작곡 ‘너의 모습’으로 참가, 장려상을 받은 이력을 갖고 있다. 당시 이 대회에 참가했던 사람으로 지금은 예명을 쓰고 있는 일기예보 멤버인 박영열, 그룹 낯선사람들의 리더인 고찬용 등이 있다.
서강대 합창단인 ‘서강합창단’의 단원이기도 했던 안 심사역은 대학시절 작곡한 노래만 8곡에 이를 정도로 노래실력뿐만 아니라 자작곡 능력까지 갖춘 싱어송라이터다.
안심사역의 전공은 전자공학이다. 그러나 안 심사역의 관심사 대부분은 음악이었다. 잠시 가수의 꿈을 꾸기도 했지만 ‘딴따라가 웬 말이냐’는 완고하신 아버지의 반대로 제대로 뜻 한번 펴보지 못하고 대학을 마쳤다.
이후 안 심사역이 첫 직장으로 선택한 곳이 당시 LG전자의 안양 LCD연구소였다. 여기서 4년여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자리를 잡은 곳이 하나은행이다. 아무래도 끼가 많은 그가 연구소에서 연구만 하는 것은 적성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옮긴 직장이 하나은행이었다. 하나은행에서 안 심사역은 기업금융부, 여신심사부 중소기업담당 등의 부서를 거쳤고 지난해초 벤처투자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1년여간 일요일도 없이 거의 매일 밤 12시가 넘어야만 퇴근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업무에 만족한다. 일단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고 투자대상 기업을 발굴하고 심사, 사후관리하는 작업이 작곡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잘 짜여진 음표들로 구성된 곡 전체가 만들어내는 감동과 초기 기업을 발굴, 성장시켜 가는 과정이 너무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모든 곡이 다 히트할 수 있는 게 아니듯 모든 투자가 성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작곡 당시 그 곡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투자에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아직도 유재하 가요제때의 추억을 가끔 떠올리며 ‘너의 모습’이란 노래를 가끔 부른다. 부인과의 결혼도 노래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살짝 귀띔한다.
벤처캐피털업계의 엔터테이너 두 사람이 연주해 갈 트랙리코더가 기대된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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