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학생 C씨는 한 채팅 사이트에 접속해 대화를 나누려다가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의 국어 파괴 현상이 이미 네티즌 사이에서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가공할 만큼 진화된 상태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이버공간에서 국어 문법의 파괴가 문제로 지적돼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90년대 들어 인터넷과 PC통신이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국어는 의도적으로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안냐세요(안녕하세요)’ ‘방가(반가워요)’ 등의 말줄임 형태와 ‘시러(싫어)’와 같은 연철표기 현상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의도적으로 재미 삼아 ‘웅(응)’ ‘아니공(아니고)’ 등과 같이 변형되는 현상으로 발전했고, 의성어와 기호들이 풍부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근래에 와서는 문법 파괴가 더욱 파격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예를 들어 ‘으 ㄲ ㅑㄲ ㅑ(감탄사)’와 같이 자음과 모음을 떨어뜨려 표기한다든지 ‘ㅎㅎㅎ(흐흐흐)’나 ‘ㅏㅑ(감탄사)’와 같이 자음이나 모음 중 하나를 아예 생략해 버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단지 ‘∼’라는 기호 하나로 ‘잘했다’ ‘좋다’ 등의 단어를 대신하기도 하며, ‘ㅣ 아 四랑¤(미영아 사랑해)’와 같이 기호와 모음을 조합시키고 거기에 한자까지 결합한 문장이 쓰이고 있어 국어 훼손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사이버공간에서의 국어 훼손은 처음에는 타자의 용이성에서 비롯됐다.
말줄여쓰기나 연철표기 등은 그것이 타자를 속도를 빠르게 해주며, 키보드의 시프트키를 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편함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요즘 사이버국어가 변질되는 양상을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상품성이 많이 깃들여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이버공간에서 인기있는 훼손된 상태의 단어나 기호들은 보다 많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광고 속의 카피로 둔갑해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네티즌들은 사이버공간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더욱 특이하고 파격적인 형태의 언어 표기를 선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대학생조차 아무런 의식 없이 국어 파괴행위를 일삼고 있어 우려가 더 크다. 사이버공간에서 훼손된 단어들을 일상회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가 하면 심지어 보고서나 연구논문에도 그것들을 사용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대학생이라면 국어 파괴가 가져올 수 있는 악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모방심리가 강한 어린이들이 인터넷의 어지럽혀진 문법체계를 접함으로써 국어학습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음은 물론 결국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창조된 한글의 진정한 모습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명예기자=권해주·한양대 postman66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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