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전자신문 공동>게임강국으로 가는길(15)유통구조의 고도화

“아무리 좋은 게임을 만들면 뭐합니까. 유통마진이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져 소비자들이 외면하지 않습니까.”

 게임개발사 관계자들은 요즘 전근대적인 유통구조 때문에 좋은 게임을 개발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물류·유통비용이 게임 판매가의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절반 이상을 차지하다보니 게임이 더이상 고부가가치 문화상품이 아니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전근대적인 유통구조의 고도화는 게임업계가 풀어야 할 해묵은 숙제다.

 ‘제작사-유통사-대형 도매상-중간 도매상-소매점-소비자’로 이어지는 복잡한 유통단계는 소비자는 물론 게임개발사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개발사에 떨어져야 할 높은 순익이 유통비용으로 대부분 소진됨으로써 결국 재투자를 통한 게임산업의 확대재생산 과정이 거의 실종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은 게임유통 인프라를 거의 장악하고 있는 일부 대형 도매상들의 기득권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타이틀의 90% 이상은 이른바 ‘총판’이라고 불리는 용산 대형 도매상들을 통해 유통된다. 개발사나 배급사들이 아무리 새로운 유통채널을 찾으려 해도 이들을 통하지 않고 중간 도매상 및 전국 소매점과 거래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개발사나 배급사는 막중한 물류비 부담뿐 아니라 신작 타이틀의 판매규모 및 가격까지 대형 도매상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형 도매상들은 이 과정에서 타이틀의 판매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밀어내기·꺾기 등 변칙적인 영업은 물론 덤핑판매 등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다.

 최근들어 이같은 유통병폐를 대대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움직임이 제작사와 배급사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가장 활발한 시도는 서점·비디오숍·프랜차이즈 등 다른 문화상품의 유통망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써니YNK(대표 윤영석), 인포그램코리아(대표 김이근) 등 기존 유통망을 뚫지 못한 ‘새내기 배급사’들은 최근 출판사와 연계한 서점유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또 게임배급사인 아오조라엔터테인먼트(대표 진가인)는 지난해 말부터 전국 300여개 비디오 대여점을 유통망으로 확보한 데 이어 최근 프랜차이즈 업체까지 유통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타진하는 등 이 분야에서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서점이나 비디오숍 등을 통할 경우 전통적인 게임유통채널을 뚫지 못해도 이른 시간내 폭넓은 판매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또 제품이 소비자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을수록 판매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 기존 배급사들도 이같은 채널을 활용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검토중이다.

 하지만 이런 유통채널 역시 총판과 서점, 비디오숍 등 유통대행사에 30∼40% 정도의 마진을 줘야 하고 위탁판매 특성상 재고 전체를 반품해줘야 하는 등 문제점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비전문매장이라 고객 서비스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큰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이런 채널을 제대로 가동하려면 고객서비스센터를 강화하는 등 추가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최근들어 몇몇 배급사들은 이같은 문제점을 보완해줄 채널로 PC방을 통한 게임유통사업 추진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 PC방은 서점·비디오숍 등에 비해 전문성 면에서 앞서고 서점이나 비디오숍보다 게임 타이틀 실수요자도 훨씬 많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또 대형 할인매장이나 양판점도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할인매장이나 양판점은 대형 도매상이나 중간 도매상 등 중간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으므로 물류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형 할인매장이나 양판점의 경우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지난해부터 게임매출이 10% 이상 성장하는 등 용산시장을 대체할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PC방·할인매장·양판점 등도 위탁관리에 따른 문제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유통대행사에 많은 유통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재고·분실·고객서비스 등의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결국 전문가들은 유통구조 혁신의 경우 업계가 공동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진단한다.

 예컨대 음반·비디오·서적 등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공동물류사업’과 같은 방안이 게임업계에도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음반업계가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는 전국 물류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이나 서점·PC방 등 위탁판매망을 업계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방안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유통채널의 활성화도 업계가 함께 풀어야할 과제다.

 온라인 유통채널은 물류비는 물론 게임 타이틀 제작비까지 대폭 절감할 수 있어 그야말로 게임유통의 일대 혁명을 이룰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세계 어느 나라보다 온라인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우리로서는 온라인 유통이 고속 성장할 여건도 충분한 편이다.

 이를 위해 업계는 저작권 보호 및 과금시스템 등과 같은 관련 솔루션을 공동 개발하거나 불법 온라인 유통에 대한 강력한 대응 등 공동보조를 맞춰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공동물류사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제는 제작사·배급사·유통사 등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업체들이 얼마나 잘 합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나 게임종합지원센터 등 관계 당국의 지원 및 역할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위자드소프트 심경주 사장은 “게임 유통구조 혁신은 그동안 줄기차게 얘기돼 온 게임업계의 숙원”이라며 “이제는 업계나 정부 등 모든 게임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고 실천할 때”라고 말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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