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용주의 영화읽기>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간장선생`

 전쟁에 대한 또 다른 시선,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98년 작품 ‘간장선생’은 ‘우나기’가 깐느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 탄생한 작품이다. 감독 스스로도 49년부터 만들고 싶었던 2차세계대전 이야기가 반백년만에 탄생된 것이다.

 ‘진주만’이 태평양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미국의 시각이라면 ‘간장선생’은 그 반대편 작은 섬나라에서 광기와 허세적인 모습으로 태평양전쟁의 말기를 겪고 있던 일본의 모습과 그안의 작은 영웅들을 다룬 영화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전쟁이라는 바이러스가 평범한 일본인들 사이에서 걷잡을 수 없는 병균이 되어 퍼져 나가고 있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전쟁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통해 역사를 치유하려 한다.

 그러나 일본이 패전한 제2차세계대전에 대한 감독의 회고는 정치적 냉소나 비판적 잣대를 들이대기에 앞서 정서적 공황기를 살아야 했던 인간들의 휴머니즘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함으로써 따뜻한 감성적 동조를 불러일으킨다.

 일본의 작은 한 어촌마을, 이곳의 의사인 아카기는 ‘의사는 발이 생명이다’라는 가훈을 걸어놓고 매일같이 동분서주하며 환자를 치료하러 다니기에 바쁘다.

 환자들의 모든 병명을 ‘간염’이라고 진단하는 그에게 마을사람들은 돌팔이라고 수군거리지만 아카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오히려 아카기를 응원하며 그를 돌봐주는 사람들은 술집 마담, 창녀와 살며 늘 술에 찌들어 사는 스님, 몰핀에 중독된 외과의사 등 시대가 요구하는 삶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는 인간들이다.

 어느날 아카기는 죽어가는 환자의 청으로 엉겁결에 그의 딸 소노코를 간호사로 받아들이게 된다. 몸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돌봤던 어린 소노코는 아카기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며 그를 사랑하게 된다.

 전장에 나가 있던 아들의 전사소식을 들은 아카기가 더욱더 간염의 병원균을 밝혀내겠다는 각오를 다지던 중 소노코는 쫓기고 있던 네덜란드 전쟁포로인 피터를 병원으로 데려와 치료하고 숨겨준다.

 아카기가 피터의 도움으로 극장에서 빌려온 영사기 조명과 현미경을 이용해 간염의 병원균을 밝혀내려는 순간, 환한 조명을 이상하게 생각한 일본군에게 붙잡힌다.

 가장 비참한 인간의 생활을 강요하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속에서 아마무라 쇼헤이가 그려내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은 삶의 여유와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는다.

 21세기로 접어든 우리들에겐 너무 뒤늦은 회고이긴 하지만 죽음이나 사랑·전쟁이라는 화두를 유머로서 풀어가는 솜씨는 이제 달관의 경지에 선 노장의 저력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영화평론가 yongjuu@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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