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퍼붓지 않아도, 배우의 옷을 벗기지 않아도, 스타가 등장하지 않아도 진한 감동을 주는 영화 어디 없을까.
허울좋은 블록버스터, 예술을 빙자한 외설영화, 개성없는 멜로영화에 물리고 지친 마니아들은 기나긴 가뭄속에 단비를 애타게 기다리는 농민(?)의 심정처럼 예술영화에 대해 목말라하고 있다.
이러한 마니아들에게 최근 대거 등장하고 있는 전문 예술영화 상영관을 추천한다. 이들 극장은 흥행보다는 작품성에 치중한 이른바 예술영화를 중점 편성함으로써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물론 개봉관을 거쳤지만 그때 놓친 팬들에겐 둘도 없는 기회다.
지난 98년 미술관을 포함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개관한 서울 종로구 소격동 소재 아트선재센터(관장 김욱한)는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영화작가로 평가받는 프랑스 알랭 레네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회고전을 연다. 레네의 초기중편인 ‘밤과 안개’ ‘히로시마 내사랑’부터 후기작인 ‘노 스모킹’까지 총 열두편을 상영한다.
‘밤과 안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의 끔찍했던 과거를 현재의 평화로운 풍경과 교차하며 역사의 책임을 묻는 추상영화의 걸작. 평화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고 히로시마에 온 프랑스 여배우가 잠시 일본인 건축가와 사랑을 나누는 ‘히로시마 내사랑’은 알려지지 않은 멜로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영화배급사 백두대간이 운영하는 ‘아트큐브’도 일반극장에서 보기 힘든 예술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순수한 소녀의 가슴아픈 실연과 복수를 그린 핀란드 마우리스마키 감독의 ‘성냥공장 소녀’를 비롯해 이란·터키·체코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낯선 나라의 예술영화들이 줄이어 개봉되거나 준비중이다.
특히 올초 상영한 아프리카영화 야바(이드리사 우에드라고 감독)는 마니아들로부터 호평과 찬사를 받은 작품.
영화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감독을 골라 매달 영화세계를 돌아보고 있는 동숭아트센터의 ‘하이퍼텍 나다’ 극장도 15일 영국 실험영화의 최전선에 선 피터그리너웨이의 화제작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을 상영할 예정이다.
또 연말이면 현대 독일영화계의 대표주자인 빔벤더스의 작품들도 만나 볼 수 있다.
이밖에 제3국의 전문예술영화제에 출품된 작품감상도 가능하다. 문화학교서울은 다음달 ‘에릭 로메로 영화제’에 이어 오는 10월 ‘아일랜드영화제’, 12월 ‘일본 B급 영화제’ 등을 준비하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예술영화를 소개할 계획이다.
상영관을 찾지 않아도 비디오를 통한 예술영화 감상 역시 좋은 방안이다. 전통있는 비디오숍을 방문하면 20세기의 예술영화 수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을 예상외로 쉽게 구하는 행운을 얻을 수 있다.
마술사실주의의 거장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는 유고출신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검은고양이 흰고양이’, 세계 영화의 프런티어로 불리는 프랑스 장뤼크고다르의 ‘비브르 사비’, 유럽을 대표하는 좌파 감독 켄로치의 ‘레이닝스톤’, 영상미학의 결정체로 꼽히는 이란 카이로스타미 감독의 ‘올리브나무사이로’는 마니아의 입에 오르내리는 예술영화 수작들이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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