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특약=iBiztoday.com】 미국 통신시장이 거센 재편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통신 산업계에는 지난 5년 간의 유례없는 고속성장을 겪은 뒤 경기 침체가 강타하면서 수십 개 업체가 파산 위기에 몰려있거나 이미 도산했으며 지난 90년대 후반의 통신 붐을 가져온 투자 열풍은 사라지고 성장 둔화와 대량 감원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투자기관 이포크파트너스는 미국의 주요 통신 사업자들의 자본 지출액이 지난 2년 동안 33%, 35% 각각 성장한 뒤 올해에는 930억달러로 6%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레드우드시티의 시장조사업체 델오로그룹의 신 우메다 분석가는 “지난 2년 간 통신 인프라 건설 붐이 일어났다가 이제는 완전히 판도가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대형 통신부문의 자본 지출은 그 영향력이 장비판매 업체와 구매 업체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통신 네트워크의 대규모 확대는 지난 수년동안 경제 호황을 뒷받침한 밑거름이었다. 지난해 말 통신업체들이 지출을 급격하게 삭감하면서 경제 침체가 가속화됐고 이는 특히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큰 타격을 입혔다.
통신산업 침체는 통신사업체와 장비업체들간 관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장비공급업체들은 수년 동안 자금력이 취약한 통신사업체에 제품을 판매할 때 자금을 융통해 주는 이른바 벤더 파이낸싱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그러나 도산과 합병으로 통신 사업체들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된 뒤 장비제조업체의 자금 지원은 더욱 신중해졌다. 전문가들은 통신 서비스 제공업체가 신 장비와 소프트웨어에 투자할 때는 매출과 이익을 당장 증대시켜주는 제품을 찾을 것이라고 꼽고 있다.
통신산업의 한가지 밝은 부문은 도시 기업들을 장거리 네트워크로 연결시키는 이른바 ‘메트로 시장’이다. 메트로 시장은 초고속 라우터를 생산해 메트로 시장에 공급하는 샌타클래라의 리버스톤네트웍스 같은 업체를 급부상시켰다. 리버스톤의 매출은 99 회계연도에 330만달러이던 것이 올 2월 마감된 2001 회계연도에 9830만달러로 폭증했다.
샌프란시스코 퍼시픽그로스증권의 조엘 통신담당 분석가는 이 같은 틈새시장의 전망을 낙관하면서도 전반적인 자본지출 감소 추세를 우려했다. 시장조사회사 델오로 그룹도 “통신업체들이 올해나 내년 이후까지 방어적 지출 태도를 견지할 것”이라며 “통신업체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문에만 지출하면서 이미 투자를 줄이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 같은 통신산업 경기 침체의 바닥에는 미 통신 산업을 자율화시킨 96년 미 통신법 제정 뒤 설립된 신생 전화회사들의 붕괴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이른바 ‘경쟁적 시내전화사업자(CLEC)’로 불리는 각 지역 신생 전화회사들은 당초 통신산업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수백개의 음성과 데이터서비스 업체들이 신설되어 각 지역의 대표적인 시내전화사업자인 베이비 벨들과 경쟁에 나섰다. 이포크파트너스에 따르면 벤처투자가와 일반 투자자로부터 막대한 현금이 이들 업체에 유치되면서 CLEC의 자본지출예산은 지난 98년 25억달러에서 2000년에는 187억달러로 급증했다.
이 CLEC와의 경쟁은 기존 시내전화사업자들의 네트워크 투자도 더욱 늘려놓아 이들 베이비 벨의 투자액이 98년 310억 달러에서 지난해 470억달러로 늘어났다.
하지만 신생 CLEC들은 지난해 시간과 인내, 돈 모든 게 고갈됐다. 이는 각 지역 시내전화 고객의 90% 이상을 차지하면서 기존 서비스의 꾸준한 매출 흐름을 올리고 있는 이들 베이비 벨이 시장을 한치도 내주지 않는 막강한 존재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대목이기도 하다.
분석가들의 예상과 달리 초고속 인터넷 접속에 소비자가 대거 몰려들지 않았으며 기술적 어려움과 서비스 지체가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을 실망시켰으며 이들 업체의 사업모델 상당수가 잘못돼 있다는 것도 드러났다. 게다가 투자자들이 통신주 투매에 나서고 통신산업에 대한 공개자본시장의 반응이 싸늘해지면서 현금 난에 시달리는 CLEC는 추가 자금 조달 창구도 찾을 수가 없는 처지다.
이들 CLEC들은 결국 최악의 사태인 도산으로 줄달음쳤다. 에머리빌에 있는 노스포인트커뮤니케이션스가 지난 1월 파산보호 신청을 냈고 곧 뒤이어 대부분 자산을 AT&T에 헐값에 넘겼다. 다른 신생 업체들은 자산을 라우터 따로 스위치 따로 식으로 온라인 경매를 통해 분할 매각하는 신세가 됐다. 버지니아주 애시번의 PSI넷도 최근 윈스타(Winstar.com), 텔리젠트(Teligent.com), ICG 커뮤니케이션스의 뒤를 따라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코바드 커뮤니케이션스(Covad.com), 리듬스 넷커넥션 (Rhythms.com) 등도 현재 좌초 위기에 몰려 있다.
신생 통신사업체에 장비 구입 자금을 빌려준 루슨트테크놀로지스(Lucent.com), 노텔(Nortel.com), 시스코시스템스(Cisco.com) 등 장비제조업체들은 미 회수 채권과 외상매출로 수십억달러를 손해보는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는 처지다.
이에 따라 대형 CLEC들의 자본 지출액은 올해 158억달러로 전년대비 15% 하락이 예상된다. 막강한 베이비 벨도 CLEC의 압력이 약화되고 경제 환경이 나빠지자 올해 자본지출액을 445억달러로 6% 줄일 것으로 보인다.
<케이박기자 kspark@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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