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비대칭 지원

신문사 데스크라는 자리에 있다 보면 특정 현안이 발생할 경우 여러 가지 채널로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접하게 된다. 일선 현장에 나가 있는 취재기자에게는 시시각각 변하는 정책과 시장의 동향을 보고받게 되고 정부나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서로의 엇갈리는 이해관계와 입장을 전달받는다. 때로는 독자들이 e메일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보내오기도 하고 성질이 다소 급한 분들은 직접 전화를 걸어 본인의 견해를 밝히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따지고 보면 언론이 여론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전달해 달라는, 독자들의 바람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된다.

 요즈음 통신서비스분야에서 데스크를 달구고 있는 것은 단연 ‘비대칭 규제’ 문제다. 양승택 정통부 장관이 통신시장 3강체제 정립과 공정한 시장경쟁 유도를 위해 ‘실효성 있는’ 비대칭 규제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이후의 일이다. 어찌보면 지난 한해 최대 이슈였던 IMT2000사업자 선정 보다 더욱 첨예하게 이해가 갈리는 의견들이 데스크에 쇄도하고 있다. 이를 보면 통신사업자뿐 아니라 전체 IT업계에 대단한 현안으로 등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까지는 비대칭 규제에 대한 찬반 양론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뚜렷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정부 입장을 적극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제야 정부가 정신을 차렸다”며 “독과점 사업자가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후발주자들의 목을 죄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은 “이 나라가 자유경제체제인가, 아니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인가”라며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정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반박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논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잣대가 자신의 기업에 이익이 되느냐의 여부를 떠나 시장경제를 바라보는 개인적 시각과 신념, 철학 등에 따라 입장을 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비대칭 규제 대상자인 한국통신이나 SK텔레콤의 협력업체 CEO 가운데도 ‘찬성파’가 있는 반면 명백히 수혜가 예상되는 후발주자의 파트너 중에서도 의외로 ‘반대파’가 많다.

 이 때문에 정통부가 추진하는 비대칭 규제가 일종의 ‘시장개혁 작업’이라고 한다면 이번 논란은 국내 IT업계 역사상 처음으로 IT정책에 사회적 철학적 관점이 개입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 비대칭 규제가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원론적 수준의 물음으로 돌아가면 정답이 매우 궁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정책 배경도 수긍할 만하고 반대파나 찬성파의 논리에도 분명 타당한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1+1=2’라는 식의 수학적 공식으로는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입장을 달리하는 각 이해집단의 의견을 수렴, 최대한의 공감대를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이 현실화돼야 하는 ‘정치적 성격’이 훨씬 강하다.

 문제는 ‘비대칭 규제’라는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기본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만 보면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유효한 경쟁제체는 국가경제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일반 소비자에게도 도움되기 때문에 정부로는 관철시켜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비대칭 규제의 장점보다는 일부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강제적으로 끌어내리는 것으로만 해석돼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 정부의 개혁이 총체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소위 ‘하향평준화’를 지향한다는 것임을 감안할 때 이 문제도 자칫 이같은 공격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후발주자의 점유율 20% 보장’ 같은 뜬금없는 설이 정부 주변에서 흘러 나오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대칭 규제는 독과점 사업자의 지나친 과점현상을 규제해 후발주자의 시장 입지를 마련해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칼로 무를

썰듯이 점유율 몇%로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것은 문제 소지가 있다.

 어쨌든 비대칭 규제는 현안이 됐고 정부가 밀고 나갈 확고한 원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남은 것은 정책 집행과정에서의 잡음을 줄이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용어부터 바꾸자. 후발주자들의 원활한 시장진입과 공정경쟁 환경 구축을 위해, 또 하향평준화가 아닌 상향평준화를 위해 속박의 의미를 주는 ‘비대칭 규제’라는 표현보다 활성화를 의미하는 ‘비대칭 지원’이라는 용어가 현실에 보다 적합하지 않을까. 이미 동기식 IMT2000사업자 선정에서 비대칭 지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정복남 부국장대우 정보통신부장 bn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