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식^백만기...그 다음에는

 < ET타워 - 정홍식·백만기, 그다음에는... >

 

 유난히 ‘스타 만들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관료라고 해서 예외를 두지는 않는다. 사카키바라. 본명보다는 별칭인 ‘미스터 엔’으로 더욱 유명한 일본의 전직 대장성 관리다. 물론 일본 언론이 붙여 준 이름이지만 그가 대장성 재무관 시절 외환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부터 사카키바라라는 본명보다 미스터 엔으로 더 잘 알려졌고 한국, 심지어 미국 언론조차 그를 자연스럽게 미스터 엔으로 표기한다.

 일본엔 미스터 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사히 신문이 80년대 중반 ‘일본을 움직이는 200인’을 선정했을 때 컴퓨터산업을 담당하던 당시 통산성의 주무과장이 당당히 선발됐고 아사히는 그에게 ‘미스터 컴퓨터’라는 호칭을 선물했다.

 미스터 엔, 미스터 컴퓨터로 상징되는 것은 무엇일까. 해당 개인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 같은 칭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큼 국민 전체가 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동시에 ‘인정’을 해주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미스터 엔은 현직을 떠났으면서도 여전히 화제의 인물이 되고 있고 일본 경제의 현실 진단과 처방을 알아보려는 외국 언론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됐다.

 한국 관료사회에서도 과거에는 ‘미스터 IT’라 불릴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이 있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IT기업 CEO나 교수들이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은 정홍식 전 정통부 차관과 백만기 전 산자부 국장이다. 정홍식씨는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의 실무 산파역이었고 백만기씨는 반도체 입국과 컴퓨터산업 부흥의 숨은 주역이라고 기업인들은 말한다.

 기업인들이 아직도 정홍식씨나 백만기씨를 이야기하는 것은 당시 그들의 정책적 영향력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업자의 말을 들어줄 줄 알고 이야기가 되는 관료’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정 전차관의 경우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어 기업인들이 늘 무서워하고 대하기 부담스러워했지만 일에 관한한 기업의 논리를 충분히 수렴하고 어떤 때는 애로사항까지 이해할 줄 아는 관료였다는 것이다. 백 전 국장 역시 정보통신산업 전반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비전을 세우고 외국에 국내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덕분에 정홍식씨나 백만기씨는 국내 IT업계에는 제1의 키맨이었고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비록 업계의 판단과 다른 정책을 밀고 나가도 무언가 국가 경제를 위한 다른 뜻이 있는 것으로 업계는 받아들였다. 그들을 ‘인정’했기에 ‘수긍’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로 현직을 떠났다.

 정홍식씨와 백만기씨 이후 IT기업인들이 ‘승복’하고 인정해주는 관료가 별로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그들이 활약하던 시기가 상대적으로 스타 탄생 가능성이 높았던 IT산업 초창기 였다는 점에서 외연과 폭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현재의 IT산업 구조상 특정 인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우리도 ‘미스터 IT’로 불릴 만한 관료 한두명쯤은 가질 때가 됐다. 지금처럼 정부부처간, 정부와 기업간, 기업과 학계간 첨예하게 대립돼 있는 상황에서 그들 모두 수긍할 만한 ‘미스터 IT’의 존재는 더욱 아쉽다.

 정통부와 산자부가 밥그릇 싸움할 때가 아니다. 판정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관료들은 전문성과 정책을 통해 심판받아야 하고 국가 경제와 산업 발전에 대한 확실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언론도 도와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스터 IT’도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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