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중심의 경제학
작은 것이 아름답다
-E F 슈마허 저, 김진욱 역
“과학자나 기술자에게는 대체 무엇을 요구해야 할 것인가.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과학·기술의 방법이나 도구는 값이 싸서 거의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고, 작은 규모로 응용할 수 있으며, 인간의 창조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위의 세 가지 특징으로부터 비폭력이 생겨나고, 또 영속성이 있는 인간 대 자연의 관계가 생겨난다. 만일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소홀히 다루어지면 일이 반드시 좌절된다.”
메모: 과학과 기술이 분초를 다투며 발전하면서 우리 생활의 토대를 흔들고 있다. 과학입국, 기술강국을 모토로 나라마다 서로 앞서 나가기 위해 혈안이다. 앞으로의 세기는 바로 이러한 싸움에서 각 나라의 명암이 갈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반드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무엇 때문에 우리는 과학의 발전과 기술개발에 정력을 쏟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의 과학과 기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방향이 과연 옳은 것인지 하는 점이다.
이런 질문에 우리는 으레 ‘삶의 질 향상’을 습관처럼 들먹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과연 그런가?
간디가 걱정했듯이 소수 사람들의 손아귀에 힘을 집중시킴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실직시키거나 기계의 단순한 파수꾼으로 만들어버리는 데 일조하지는 않는지, 맥이 빠질 만큼 단조롭고 의미 없는 기계적인 작업으로 인간의 창조성을 발휘할 기회를 애초부터 봉쇄해 버리지는 않는지 말이다. 인간에게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미명 아래 서로 부딪치며 이해의 폭을 넓혀갈 장(場)을 앗아가고, 하나의 기기나 기술의 노예로 만들어 인간으로서의 주체성과 창의력을 죽이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리모컨과 전자계산기, 수많은 전자게임 등에 빠져들수록 우리의 몸과 머리 어느 한 구석에서 기능이 퇴화되며 삐그덕대는 위험신호가 울려오지는 않는지 귀기울여 볼 일이다.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다며 개발한 기술로 인해 오히려 우리의 정신이 황폐해지고, 일에서조차 소외되거나 끌려다닌다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영악한(?) 인간이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격이다. 하나의 기술이나 기능,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고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정말 무엇을 위한 발전이고 개발인지 자문해 봤음 좋겠다. 그래야만 과학기술에 의한 ‘신천지’의 개화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양혜경기자 hky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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