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니, 한 마리의 늑대니, 퍼머족 1호 국회의원이니, X재팬의 열렬한 팬이니, 뭐니해도 일본의 새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59)는 일단 자민당이 선택한 ‘선거 총리’다.
그는 선거 캠페인 내내 ‘자민당 바꿔, 일본 바꿔’를 외쳤다. 고이즈미를 자민당 총재로 만든 것은 그의 대중적인 개혁 이미지다. 일본 언론은 지금 고이즈미에 잔뜩 취해 있다. 고이즈미를 61년의 미 케네디 대통령과 견주기도 한다. ‘고이즈미즘’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개혁은 약속했으나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한 일본 전문가는 “지지도를 높이려면 지금 타고 있는 자전거 페달을 최고 속도로 밟아야 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온통 파격이고 변화이고 불화이긴 하지만 기대 또한 적지 않다.
한 신문은 ‘도대체 고이즈미가 탄 배의 항로를 알 수가 없다’며 기대 반, 불안 반이다. 내각이 과거와 다르다. 여성만 다섯이고 자민당 바깥 사람도 꽤 된다. 모리 전 총리 정권이 막 출범했을 때보다 평균 연령이 4.6세나 젊어졌다. 하지만 내각 장관들의 평균 나이가 61.5세인 것을 보면 일본은 여전히 일본이다.
고이즈미의 정치형태도 다르다. 50년대 식으로 잘 빗어 넘긴 매끈한 머리 모양새가 하시모토의 상징이라면 고이즈미는 최신판 헝클어진 퍼머 머리다. 머리스타일만큼 판이하다. 파벌 보스가 부하 고참관료를 시켜 내각 지명자에게 전화로 지명을 통보해주던 과거의 권위 냄새가 사라졌다. 고이즈미 자신이 직접 지명자에게 전화를 걸어 수락 여부를 물었다.
게이오 대학 출신관료가 와세다 대학 출신자를 누르고 권력 중심에 더 많은 자리를 잡은 것도 큰 변화다. 고이즈미는 물론 게이오 대학 출신이고 권력 중추부에 게이오 출신을 4명이나 배치했다. 와세다는 3명 뿐이다.
그는 전형적인 자민당 정치인과는 색깔이 다르다. 헤비메탈 음악을 듣고 레슬링과 킥복싱을 좋아한다. 이혼 경력도 있다. 주변에 사람이 꼬이지 않고 혼자 있을 때면 몸살이 나는 것이 정치인이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일반 열차를 타고 혼자 여행도 잘 가고 CD쇼핑도 혼자 다닌다. 고이즈미는 언론에도 개방적이다. 기자들 귀에 대고 속삭이면서 ‘오프 더 레코드’라고 속닥거리기보다는 대놓고 직설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취재를 원하는 기자들 전화도 자기가 직접 받아 챙기기도 한다. 대중의 여론을 더 중히 여기는 스타일이라는 평까지 있다.
고이즈미라는 괴짜 바람이 일본인에게는 신선할지 모르나, 그는 일본 우익의 대표주자다. 대북 관계에서 일본 우익의 입장이 반영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한미일 3각 공조로 이끌어왔던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미 공화당 부시 정권만도 버거운 판인데 고이즈미라는 또 하나의 빙벽을 만났다.
‘뉴욕타임스’는 ‘근심스러운 일본’이라는 제목의 4월 26일자 사설에서 ‘고이즈미는 일본 국민에게 그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할 경우 여름쯤에 총리 자리를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썼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 많다는 말이다.
불행히도 고이즈미 주변엔 투사가 없다. ‘자민당 바꿔, 일본 바꿔’를 외친 만큼 고이즈미에게는 싸울 일만 남았다. 그러자니 투사가 필요하다. 개혁에 저항하는 관료들의 허를 찌르고 정적들의 뒤통수를 치자면 정치수완 못지 않은 투지와 이를 실천에 옮길 투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고이즈미 주변은 허전하기만 하다.
그는 일본의 우정제도를 민영화하겠다고 입만 열면 별렀다. 정치인 고이즈미를 빛나게 한 것이 바로 이 우정제도 민영화 주장이다. 일본 우편 시스템이야말로 공룡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은행과 보험회사를 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설 사업체와 피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칫 서툰 손을 댔다가는 고이즈미의 정치 생명마저 아슬아슬할 판이다. 이 우정 사업이야말로 자민당의 괄시할 수 없는 돈줄이고 표밭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는 정부 재정도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한다고 기염을 토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은 없다. 일본은 현재 세계 주요 선진공업국 중에서 정부 빚이 가장 많은 나라다. 무려 국내 총 생산의 130%나 차지한다. 공공사업비를 줄이겠다는 것도 고이즈미의 개혁목표 가운데 하나. 지난해 지출비용은 자그만치 4150억달러에 달했다. 줄일 수 있을까. 하려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수해야 할 것이 있다. 자민당 지방 관리들에게 등을 돌려야 한다. 이번에 고이즈미를 뽑아준 사람들이다. 일본의 국제 신용도도 굳이 따지자면 문제다. ‘유로머니’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6개월 전 세계 13위였던 일본의 차관 신용도는 16위로 밀려났다. 은행 빚 갚고, 공공사업비 줄이고, 우정 계좌 및 보험 시스템만 개혁해도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사람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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