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벤처지원 포럼]주제발표-벤처정책 현황과 개선방향

◆한양대 한정화 교수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벤처정책은 단기간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벤처정책 실시 초기부터 정부개입은 시장을 왜곡시키고 여러가지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시장기능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돼 왔다.

정부는 이런 비판을 인식해 인프라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려고 했으나 단기적 정책효과에 대한 압력으로 방향설정이 불분명했다. 정책연구기능의 취약으로 정책비판에 대한 대응논리도 갖추지 못한 채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임기응변식의 대응을 보여왔다.

특히 직접개입의 부작용보다 단기간에 양적확대 위주로 지원함으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IMF 경제위기의 극복과정에서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치적 논리에 의해 실업과 재벌을 대체할 기업집단의 육성을 목표로 삼았다. 몇개 기업이 설립됐고 얼마를 지원했다는 숫자로서 정책성과를 홍보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대표적인 예로 창업보육센터의 급증을 들 수 있다. 타당성에 대한 명확한 분석없이 설립을 지원함으로써 부실화를 초래했다. 인프라가 취약한 상태에서 정부가 강력한 후원(sponsorship)을 하게 되면 당연히 역기능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직접지원은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s)를 조장하게 된다. 이런 문제점이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하게 대책을 고려하지 않았다.

인프라정책은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입장에서는 우선순위가 떨어지게 된다. 얼마만큼 지원했다는 숫자가 정책을 홍보하는 데는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벤처생태계의 구축을 위해 정부는 직접적 지원과 인프라 구축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초기 유인이 필요한 분야에 선택적으로 직접지원을 하지만 유인효과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

서는 시장기능이 작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개입의 정도, 직접지원과 인프라의 균형유지, 정책전환의 시기 등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반드시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그동안 벤처에 대한 정부의 정책의지를 반영하듯, 부처간 다양한 지원정책을 전개해 왔다. 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과학기술부뿐만 아니라 최근 환경부·문화관광부·농림부 등에서도 벤처육성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 중 각 부처가 가장 활발하게 지원하고 있는 분야가 창업보육센터다.

현재 창업보육센터는 정통부·과기부·중기청이 각각 설립하고 있으며 환경부와 문광부도 설치할 계획으로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독자적인 창업보육센터를 설립하고 있다. 그 결과 창업보육센터가 급속하게 증가하는 효과는 있으나 중복·과잉 투자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다. 최근에는 벤처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과정에서도 산자부와 정통부간의 갈등까지 노출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처간 갈등이 일고 있다.

정부는 특히 벤처가 지식산업임을 간과한 채 정확한 지식과 정보에 바탕을 둔 정책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데는 인색하고 전시효과가 높은 보육기관·벤처집적시설 등 하드웨어 양산에 치우친 정책을 실시했다. 인프라정책의 추진과정에서도 시설투자나 자금집행 등에 치중하고 인력양성·전문서비스지원·제도개선 등의 소프트웨어 인프라 확보 노력은 미흡한 경향이 있었다.

이같은 현상의 근본적인 문제는 벤처현상과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벤처생태계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구성돼 있다. 정책의 대상이 되는 이해관계자의 행태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정책대안의 개발이 필요하다. 벤처는 경제산업적 변수만이 아니라 정치법률·교육·사회문화·과학기술 등의 다양한 변수와 영향을 주고 받는다.

벤처생태계가 보다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학습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 현상을 분석하고 지식을 종합하는 기능이 꼭 있어야 한다. 거시적 차원만이 아닌 미시적 차원의 연구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러한 연구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기능이 없다.

현재로서는 가장 기본적 질문에 대한 정보마저 부족하다. 부분적인 그림은 갖고 있지만 자료를 통합적인 시각에서 분석해 정책화하고 정책의 수행결과를 평가하는 기능은 약한 상황이다.

디지털경제 또는 지식기반경제에서 벤처기업의 장기전망에 관한 구상도 필요하다. 지난 99년같은 벤처붐 시기에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관점에서 전망하다가 위기상황이 닥치자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정부와 민간·NGO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제시가 필요하다.

디지털경제의 특성 중 하나가 산업간 융합화 현상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융합화를 비롯, 방송과 통신의 융합현상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IT를 둘러싼 정통부와 산자부간에 영역다툼이 심각하다. 바이오테크놀로지(BT)는 보건사회부, 문화관광산업은 문광부 등의 영역으로 각 부처가 주도권을 행사할 경우 정책조정기능을 유지하기 힘들다. 현재 출범한 벤처정책협의회가 조정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해 벤처정책 중 가장 중요한 이슈가 벤처기업의 해외진출을 촉진시키는 일이다. 인큐베이팅을 통해 진입비용을 최소화하고 성공확률을 높이고자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지네트워크 구축에는 장기적인 투자가 동반돼야 하기 때문에 단기·업적주의는 지양해야 한다. 지역별 전문가와 정부DB를 구축, 학습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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