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사회와 전자상거래」
존 하겔 3세 지음, 세종서적 펴냄
97년 처음 출간된 이래 미국의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를 유지한 책으로, 인터넷 비즈니스의 세세한 매뉴얼보다는 마케팅 전략과 경영철학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제목은 다소 밋밋하지만 내용은 아주 좋다. 인터넷 비즈니스 종사자와 기업 간부들의 필독서로,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비즈니스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바이블로 삼고 있다. 인터넷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어도 이해에 어려움이 없다.
이 책의 독창성과 매력은 인터넷을 테크놀로지 중심이 아니라 인간관계 중심으로 본다는 데 있다. 전화가 처음 출현했을 때 그 발명자인 벨조차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보다는 뉴스나 음악을 전달하는 정보전달 수단으로서의 효용에 더욱 주목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역시 정보 고속도로로서의 측면이 강조되고 있지만 결국 이 고속도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화두는 「온라인 공동체(virtual community)」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동호회들도 보여주듯 네트워크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소식을 나누며 만난 지 수십 분 만에 친구처럼 지내도록 해준다. 그들이 확보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매우 강력하고 신속해서 이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은 원자화된 자본주의 시장의 소비자를 상대로 비즈니스할 때와는 분명히 다른 경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저자들은 이런 온라인 공동체의 출현이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의 시장환경 변화를 결정적으로 촉진하리라고 본다. 물론 현대 경영학이 고객과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면서 「고객만족」 「고객감동」을 주장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객들의 온라인 「공동체」를 기업이 주도적으로 만들어낼 것을 주장한다. 이 온라인 공동체를 통해 기업과 고객의 의사소통은 아주 밀접해지며 여기서 고객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그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갖게 된다.
고객들은 자기와 같은 입장에 있는 다른 고객들의 평가를 가장 신뢰한다. 기업으로서 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욱 향상된 서비스로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뿐이다. 그러나 일단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면 온라인 공동체의 특성상 고객 충성도 역시 강하게 유지된다.
이 책은 인터넷에 대한 낙관주의에 기초한다. 인터넷은 인간관계의 발달에 기여할 것이며, 이는 기업에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한다. 이에 적응하기 위한 기업의 노력은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을 기업으로부터 소비자에게로 돌려주게 되며, 이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전기가 되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은 음란 동영상 전파나 원조교제의 온상이 되는 등 비인간화를 부채질하는 측면도 있지만 소외감이 만연된 현대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인간화의 측면이 비할 바 없이 중요하다. 한 아파트, 한 계단에 살면서 인사도 안하고 지내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인터넷에서는 쉽게 친구도 되고 애인도 되며 신뢰를 주고받는다.
신뢰가 있기 때문에 서로의 말도 믿게 되며, 입소문이 위력적인 힘을 갖게 된다. 광고에 돈을 들이는 것보다는 우호적인 입소문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기업의 수익구조에도 유리하다. 인터넷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면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입소문의 위력, 이것이 진정 온라인 마케터들이 전력을 기울여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터넷 비즈니스와 온라인 공동체의 결합이라는 전략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고 있는 업체는 극히 드물다. 미국의 AOL·아마존은 이런 점에서 그나마 모범적이지만 아직 정답을 찾아내고 있지는 못하다. 아직 인류의 지혜가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이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를 목도하리라 확신한다. 그때가 되면 인터넷 거품론도 결정적으로 사그라들게 될 것이다.
한국어판의 한 가지 중요한 문제점은 「가상사회(virtual community)」라는 번역이 원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공동체」로 번역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유식 알라딘 대표 ceo@alad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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