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살아있다>(1)다시 뛰는 중견기업들-굴뚝서 희망이 피어오른다

정보기술(IT)제조업체들이 부활하고 있다.

그동안 온라인업체들의 부상과 함께 굴뚝산업으로 치부되기 일수였던 IT제조업체들이 최근 실적과 성장성을 겸비한 아이템으로 국내 산업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만도 인터넷업체들이 미래가치만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국내 IT산업의 총아로 떠오르면서 IT제조업체들은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불과 1년만에 상황은 급반전됐다. 인터넷업체들이 비즈니스 모델 부재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한순간에 거품논쟁에 휩싸이면서 급격하게 쇠퇴했다. 반면 IT제조업체들은 지난해 경기불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면서 IT산업의 핵심 아이템으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IT제조업체들은 지난해 역경의 시간을 보냈다. 벤처붐을 등에 업고 신경제산업의 주류로 나타난 인터넷업체들이 득세하면서 IT제조업체들은 시장의 관심권 밖으로 멀어져 갔다. 디지털 혁명이라는 큰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다.

IT제조업체의 인력들은 인터넷과 첨단기술 벤처를 찾아 몰려가면서 인력누수 현상까지 발생했다. 코스닥시장이 폭등하자 IT제조업체의 인력들이 대박의 꿈을 찾아 인터넷업체로 삼삼오오 모여든 것이다. IT제조업체는 부족한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규인력채용에 나섰지만 제조업을 경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마저도 역부족이었다.

IT제조업체 창업 열기도 시들해졌다. 성장산업 바람을 타고 한정된 인력과 자본이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신생업체로 대거 몰려드는 바람에 IT제조업체의 창업은 그만큼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해도 IT업계에서는 제조업체를 창업한다고 하면 원시인으로 취급하는 분위기였다.

이 때문에 IT제조업계에서는 수출성장을 주도하는 IT 부품 및 소재 산업의 약화로 IT 수출기반을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됐다. 또 전자상거래 등 촉망받는 IT산업도 오프라인 IT제조업의 뒷받침이 없이는 성장의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는데도 IT제조업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섞인 우려도 터져나왔다.

IT제조업체들은 이같은 내우외환으로 주식시장에선 미래가치를 중시하는 주주들로부터 외면받게 됐다. 인터넷 등 성장업체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문전성시를 보이는 반면 IT제조업체는 사업자금 운용을 위한 증자 한번 하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인터넷거품론과 벤처위기론이 확산되면서 IT제조업은 재평가를 받게 됐다. 돈 한푼 벌어들이지 못하는 인터넷업체가 성장성만으로 IT제조업체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과연 적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코스닥시장의 인터넷업체인 새롬기술과 거래소시장의 PCB생산업체인 대덕전자의 경우 이같은 사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새롬기술은 인터넷전화서비스 다이얼패드로 액면 5000원 기준으로 주당 가격이 100만원을 상회하며 코스닥황제주로 등극했다. 당시 대덕전자의 주가는 12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새롬기술과 대덕전자의 실적은 천양지차다. 새롬기술은 지난해 수익모델의 부재 속에 216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성장의 한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반면 대덕전자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매출과 순이익이 전년대비 각각 31%, 68% 늘어난 3450억원과 491억원을 기록,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IT제조업인 이동통신단말기업체들도 세계적인 기술경쟁력과 브랜드 인지도로 세계시장을 휩쓸며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팬택·세원텔레콤·스탠더드텔레콤 등 중견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단말기 제조업체들은 해외 유명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생산 등으로 급성장하는 내수시장과 해외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탄탄한 실적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장비업체들도 수출과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차세대 장비의 매출 본격화 신장과 함께 대만·일본·유럽 등지의 수출을 크게 늘리고 있으며 파이컴도 차세대 반도체 검사장치 양산에 따른 매출과 수출의 본격화로 큰 폭의 실적호전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IT제조업에 대한 평가가 바뀐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면 지난해와 같은 위기를 다시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우선 IT제조업체들은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의 적응을 요구받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맞게 기업대소비자(B2C) 및 기업대기업(B2B) 간 전자상거래 등 새로운 네트워크로 전환하고 상품 및 서비스뿐만 아니라 인사·총무·기획 등 내부 경영활동 역시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효율적으로 변화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 IT제조업체들이 발빠른 디지털화로 생산력과 경영의 효율성을 높여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제조관련 IT 벤처기업도 시급히 육성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IT제조업은 급속한 기술변화와 기술의 복합화로 인해 하나의 업체가 모든 기술을 자체적으로 보유하기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대기업 및 중견 IT제조업체는 관련 벤처기업에 적극적으로 자금과 설비를 제공하고 벤처기업은 투자업체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제공하는 상호보완적인 협력체제 구축이 키포인트다.

또 온라인업체의 인수합병(M&A) 및 전략적 제휴도 발벗고 나서야 할 때다. 일본 소니는 지난해 게임기 판매에만 머무르지 않고 게임기의 인터넷 기능을 통해 각종 소프트웨어 공급과 상품정보, 사후서비스를 수행해 성공한 IT제조업체로 거듭났다. 국내 IT제조업체들도 올해 들어 인터넷 관련 사업목적 추가 등 적극적인 온·오프라인 결합을 추진하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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