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3이라는 숫자

모인 문화산업부장(inmo@etnews.co.kr)

수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그 가운데 3이라는 수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애착을 갖는다. 「완전 무결」 「하나의 흠이 없는 완벽한 수」 정도쯤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성적이나 물건의 품질을 나눌 때나 한달을 세분해 부를 때는 꼭 셋으로 나눠 셈을 한다. 한달을 상순·중순·하순으로, 물건은 상품·중품·하품으로 나누는 것 등은 모두 이러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타고라스 시대의 사람들은 세계가 하늘의 주피터·바다의 넵튠·지옥의 악마 플루토 등 3인에 의해 각각 지배되고 있다고 믿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형상과 능력이 한결같이 3이라는 숫자와 연을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반면 4라는 수는 무척 꺼린다. 죽음을 뜻하는 사(死)와 통한다는 뜻에서다. 우리나라에는 그래서 4층이 없는 빌딩이 많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4」라는 수를 오히려 성스러운 수로 여겼다. 1·2·3·4의 네 개의 수로부터 10이라는 완전한 수가 만들어진다는 피타고라스의 주장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단순한 미신에 반해 피타고라스는 4라는 수에 대해 매우 생산적인 의미로 해석했던 것이다.

최근 방송위원회가 홈쇼핑 추가 채널 수를 3개로 결정하자 논란이 일고 있다.

한쪽에서는 너무 많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라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규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업체에서는 시장경쟁 원리를 무시한 전근대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차제에 홈쇼핑채널을 등록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방송학자들도 대체로 신규 진입 추진업체들의 주장에 공감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의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홈쇼핑 채널과 시민단체에서는 무책임한 행정이라며 방송위의 결정을 강하게 힐난하고 있다. 이들은 방송위의 구도대로 라면 무려 5개사가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과연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채널이 있느냐는 것과 그렇잖아도 말썽 많은 소비자들의 피해 사례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반문인 것이다.

양측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시장경쟁원리를 도입해 경쟁에서 낙오하는 기업은 마땅히 도태돼야 하고 연간 9000억∼1조2000억원에 이르는 홈쇼핑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독점체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을 돌아보면 그리 간단치 않은 일이다. 지역방송국(SO)에 비해 프로그램 공급업자(PP)들은 경영난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부터는 프로그램 공급자들에 대한 등록제 시행으로 방송진입이 더욱 쉬워진다. 올들어서는 44개 PP가 경쟁을 벌여 나가야 한다.

반면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채널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망 사정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4∼5개 채널은 채널수용 불가로 개점휴업이란 문패를 달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SO들은 수익성이 없는 채널은 수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여기에다 하반기부터는 위성방송이 본격 시작된다. 생각밖으로 방송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방송위의 3개 채널 승인 방침은 케이블방송계 안팎의 상황 논리를 가미한 기막힌 결정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흠잡을 데 없는 숫자다. 나름대로 완벽을 꾀하자는 것일께다. 그렇다면 더 완벽한 수인 4라는 숫자는 왜 외면했을까.

우화 「자유인 이솝」의 한토막이다.

하루는 이솝이 4인의 노예와 함께 무거운 짐을 갖고 먼길을 떠나야 했다. 짐은 묵직해 보이는 상자 하나와 짐자루, 항아리 그리고 네사람이 함께 들어야만 들 수 있는 빵바구니였다. 이솝이 빵바구니를 챙겨 등에 얹혀 달라고 하자 4인의 노예는 고생을 자초했다며 비웃듯 그 짐을 그의 등에 덥석 올려 주었다. 그러나 그 빵바구니는 다름아닌 그들이 먼길을 가기 위한 식량이었던 것이다.

4인의 노예가 도착지까지 무거운 짐을 지고 간 반면 이솝은 하루가 다르게 가뿐해 지는 빵바구니를 옮긴 셈이다.

정부의 정책은 상황에 따른 완벽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지혜로움이 더 담겨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