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삼국지 아시아 IT 대로망>20회-IT인력 확보 전쟁

한국과 중국의 정보기술(IT)산업은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꽃을 피웠다.

IMF체제와 천안문사태는 거침없이 성장해온 한국과 중국에 있어 최대의 위기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는 결국 두 나라 IT산업의 자양분이 되는 아이러니가 연출된다.

한국의 IMF는 재벌 위주의 경제 구조를 깨는 계기로 작용해 IT 벤처산업의 급성장을 이끌어냈다. 특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평생직장에 대한 회의감에 빠진 사람들은 벤처행을 택했다.

때마침 불안한 금융시장에서 갈 곳 몰라 하던 돈이 벤처시장에 유입되자 벤처기업 붐이 일었고 이곳 저곳에서 벤처 신화가 탄생했다.

하다못해 실업자들은 퇴직금을 모아 PC방을 차려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는 선봉장이 됐다.

논란은 있으나 벤처기업들은 IMF 조기 탈출의 일등 공신이었다.

지난 89년 6월 발생한 중국의 천안문사태는 중국 젊은이들을 해외로 내몰았다. 그러나 10년 뒤 귀국한 이들은 중국 IT산업의 주춧돌이 되고 있다. 「새옹지마」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중국의 첨단 산업지구인 베이징 중관춘. 지난해부터 이곳에 해외 유학생들이 잇따라 귀국해 둥지를 틀고 있다.

중국 당국이 지난해 4월 「해외유학생 창업촉진 규정」을 만들어 창업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중관춘과기원관리위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말부터 3개월 동안 태어난 해외유학생 벤처기업은 50개에 육박한다. 평일만 놓고 보면 하루 평균 하나꼴로 창업된 셈이다. 창업수속을 밟는 해외유학생들도 수백명에 이른다.

이들 유학생의 60%가 박사급의 고급인력이다. 이들은 자신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선진 기술과 해외 벤처자본을 갖고 온다.

이들의 귀국행은 중국에서도 마음 놓고 사업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해외유학생들은 중국에서 벤처기업 붐이 일기 시작한 90년대말까지도 귀국을 망설였다. 천안문사태의 앙금이 가시지 않았다.

유학생들이 모두 반정부 세력은 아니다. 오히려 유학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부유층 자녀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구호도 단순했던 민주화의 함성을 무자비하게 탱크로 진압하는 중국 정권에 대해 할 말을 잃었다. 아버지 세대가 목소리를 낮춰 얘기했던 「문화혁명」의 그림자가 아직 남아 있음을 똑똑히 지켜본 것이다.

유학을 온 미국에 남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10년이 흐르면서 천안문사태도 점차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잊혀져 갔다. 천안문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도 달라졌다.

아직도 중국 현 정권은 천안문 시위대 진압에 대해 일체의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나 시위 자체는 「있을 수 있던 일」이라며 한걸음 물러섰다.

기업에 대한 태도는 더욱 달라졌다. 자국의 IT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해외 기술과 자본을 적극 유치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국가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개방정책을 펼쳤다.

특히 중국정부는 선진 IT산업을 경험한 해외 유학파들의 힘을 모으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거저 기술과 자본을 주려는 해외 기업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유학생들 역시 이미 포화된 미국 시장보다는 가파르게 성장하는 모국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귀국행 비행기에는 꿈에 들뜬 유학생들로 붐비는 것이다. 주요 대학이 밀집한 베이징에서 유학을 떠나는 학생과 귀국하는 해외 유학생의 비율은 10대 8정도나 됐다.

중국 인터넷사업의 대표 주자격인 소후와 8848넷 등은 유학파들이 만든 벤처기업이다. 해외 유학파들의 꿈은 찰스 왕과 제리 양같은 인물이 되는 것이다.

찰스 왕 컴퓨터어소시에이츠(CA) 회장과 제리 양 야후 창업자는 각각 중국계로 IT 거물이 된 대표적인 인물이다.

상하이 출신의 찰스 왕은 사회주의 정권의 핍박을 받은 법률가인 아버지를 따라 1952년 뉴욕에 건너왔다. 고학 끝에 대학을 나와 기업용 소프트웨어(SW)업체를 차려 이제는 연봉만 6억5000만달러인 세계적인 SW 거물이 됐다.

대만 출신인 제리 양은 두살 때부터 미국에서 생활한 사실상 미국인이다. 스탠퍼드대를 다니다 창업해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창업가의 길을 밟았다.

요즘 귀국해 창업하는 중국 유학생들은 찰스 왕과 제리 양을 합쳐놓은 듯하다. 다만 이들은 이미 시장이 성숙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진 미국보다는 중국에서 그 꿈을 이루려 하는 게 다를 뿐이다.

한국의 벤처산업도 유학생들의 힘을 톡톡히 봤다. 특히 인터넷 벤처기업가들은 해외에서 인터넷에 눈을 떠 귀국해 한국 인터넷산업을 발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창업한 해외 유학파들의 공통점은 창의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창의성은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체제에서 나오기 쉽지 않다. 발휘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개방사회인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 점에서 민주화한 지 얼마 안된 한국이나 아직도 권위주의적인 나라 중국과 비교해 유리하다.

그런데도 획기적인 사업 아이디어로 성공한 벤처기업가를 일본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개인보다는 일본의 대기업이 더욱 창의적이다. 소니는 온라인 게임을 휴대형으로 만들었으며 세븐일레븐은 주문은 인터넷으로, 상품찾기는 편의점에서라는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었다.

일본은 아직도 집단주의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일본에서 개인은 여전히 전체를 위한 한 조각일 뿐이다.

미국 등지에 있는 일본 유학생들도 귀국하기보다는 현지에서 일을 하려 한다.

경직된 일본 사회에서 창업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이러니 일본은 IT분야에서 극심한 인력난에 직면했다.

지난해 여름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라는 방갈로르에 있었다. 수도인 뉴델리에 가기 전의 방문이었다.

총리로는 10년 만에 인도를 찾은 그는 『일본은 인도의 수준높은 IT인력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앞으로 3년간 1000명의 인도 기술자를 일본에 데려다가 교육시키고 비자문제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일본에 입국할 때 검색당하는 수모를 잊지 않고 있는 인도인들은 달라진 일본정부의 태도에 어리둥절했다.

일본 정부의 인도 IT인력 유치 방침은 자국민보다 창의성이 우수한 인도 IT인력을 활용해 자국의 IT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에서 나왔다.

그렇지만 이미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유혹을 받아 몸값이 오를대로 오른 인도의 전문인력들이 아시아인에게 배타적이고 물가도 비싼 일본에 가려할지는 미지수다.

또 일본은 모든 공립학교에 인터넷망을 까는 「정보 활용능력 향상」이라는 교육정보화 프로그램을 올해안으로 완료할 계획이다.

경쟁국인 한국과 중국의 젊은이에 비해 낮은 정보화 능력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일본은 대기업 위주의 IT산업으로는 미국을 뒤쫓고 한국과 중국을 떨어뜨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IMF 조기 탈출의 제1공신 한국의 벤처기업가들은 위기에 직면했다. 벤처 자금줄이 끊기면서 엔진이 힘을 잃었다. 도덕적 해이 문제도 발생했다. 제2의 IMF사태를 맞게 만드는 장본인이 될 것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엔진은 여전히 돌아간다.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은 여전히 벤처신화의 꿈을 잃지 않고 있으며 벤처 창업의 열기도 식지 않았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들은 최근 벤처붐이 식으면서 인력 수급에 숨통이 트이는가 싶었으나 인력 구하기는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다. 해외 유학중인 고급 인력을 끌어들이려 해도 반응은 시큰둥하다.

중국의 벤처 창업가들의 열기는 오히려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명문대학이 밀집한 베이징과 상하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중국도 지난해말 나스낙에 상장한 중국 인터넷 기업의 주가 하락으로 최근 외국 자본의 투자가 주춤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하면 낙향해야 하는 절박감 때문에 중국의 학생들은 어떻게든 성공하려 애쓰고 있다.

해외 금융자본의 유치가 적어졌으나 중국의 WTO 가입이 임박하면서 해외 기업의 투자 붐은 확산되고 있다. 벤처 창업이 아니더라도 일자리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톈진시만 놓고 보면 지난해 8만여명의 IT인력이 필요했으나 공급인력은 7만명에 불과했으며 2010년께에는 인력 수요가 30만명의 고작 절반인 16만명 정도만 공급이 가능하다.

중국 정부는 부족한 인력을 해외 유학파들로 채우려 한다. 주룽지 총리는 70년대 한국과 대만이 해외 유학파들을 귀국시켜 전자정보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교훈을 잊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절박하다. 한국과 중국은 IT산업에서 가파르게 성장하는 데 비해 일본의 성장은 더디다. 물론 세계적인 대기업을 보유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 하지만 자본이 점차 힘을 잃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가 걱정된다. 일단 외국인력이라도 수입해 쓰자는 고육책이 나온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산업사회에서 힘은 자본에서 나왔다. 정보사회에선 지식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곧 고급 인력들이다.

아시아 IT산업 패권을 노리는 한중일 3국은 소리 없는 인력 확보전쟁을 벌이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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