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논설실장 hdlee etnews.co.kr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절기다. 그 입춘이 내일 모레다. 입춘이 돌아오면 어릴 적 기억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입춘 전날 온 식구들이 마치 진객이라도 맞이하듯 집안을 구석구석 말끔히 청소했던 일이다. 겨우내 쌓인 집안의 먼지를 털어내고 안방과 마루 등에서 걸레질을 정성들여 했다. 심지어 마당과 골목까지 싸리비로 비질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입춘날 아침에는 대문과 기둥, 대들보에 「입춘대길」 「국태민안」 「가급인족」 등 그해 가정의 행운을 비는 글귀를 경건한 마음으로 부착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이같은 모습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지만 농촌에서조차 이런 글귀를 써 붙이는 집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세태가 그때와 지금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입춘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한테 막연하지만 꿈과 희망, 활력과 생동감을 심어준다는 사실이다. 이때가 되면 겨울잠에 푹 빠졌던 대지도 기지개를 켜고 그래서 땅에 새로운 기운이 돋는다고 한다. 농촌에서는 입춘 때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광에 넣어두었던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면서 그해 풍년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다.
그런데 올해는 입춘이 바로 눈앞에 성큼 다가왔지만 봄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입춘 때면 북쪽의 매서운 찬바람 대신 동쪽에서 훈풍이 불어 언 땅을 녹인다고 했지만 실제 그와는 거리가 멀다. 고개를 돌리면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설날 전후해 내린 눈이 아직도 수북이 쌓여 있다. 산과 들녘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은색 눈이불을 덮고 누었으니 봄기운이 느껴질 리 없다.
그러나 절기의 뒤바꿈과 변화는 어김이 없다. 멈추거나 지체하지 않고 주기에 따라 자리바꿈을 계속한다. 아무리 동장군이 맹위를 떨쳐도 얼음장 밑으로 오는 봄은 막을 재간이 없다. 계절의 변화는 빈손이 없다. 계절이 자연에게 새옷을 선물한다. 봄에는 초록색 옷을, 여름에는 진녹색 옷을, 가을에는 금빛 옷, 그리고 겨울에는 흰옷을 준다.
이번 입춘에 우리는 마음속에 어떤 글귀를 새겨넣고 가정이나 기업, 국가의 행운을 기원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국가부도 위기의 그늘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지금 생활의 입춘대길에 지름길은 없을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마음의 자세는 무엇인지 반성해 보는 일이다.
기본적으로는 우리 앞의 난관은 각자가 더 많이 노력하고 창조하고 개혁해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해결해야 할 난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제회생과 국민화합, 정의사회, 디지털시대 지식강국, 벤처 재도약, 노사화합, 구조조정, 제품의 경쟁력 향상 등 그야말로 수없이 많다. 우리가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회복에 노력했지만 하반기 경제전망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은 여전하고 수출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내수도 7개월째 위축되는 추세다.
우선은 각자가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고 본다. 지금 개혁의 발목을 끈질기게 잡고 늘어지는 것은 구태의연한 사고다. 언행 불일치의 정치인, 갈지자 걸음의 정부정책, 집단이기주의 등이 대표적인 구태의 산물이다. 이런 것을 타파하자면 모두 변해야 한다. 기존의 사고와 행동의 틀에서 탈출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이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상대한테만 『변하라』고 주문하는 일이 많다. 변화가 없으면 창조가 불가능하다. 사고의 변화가 없으면 행동이 바뀔 수 없다. 삶은 발전의 과정이 아니라 창조의 과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발상, 이의 개념화, 시각화의 과정도 자신이 변해야 가능하다. 구태를 척결하는 시발점이다.
신뢰 구축도 중요한 요소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정부건 상대한테 믿음을 줘야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신뢰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게 아니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말만으로는 안된다. 신뢰는 오랜 기간 관계를 통해 형성된 무형의 자산이다. 특히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면 변칙과 편법, 탈법이 난무한다. 그래서 고위공직자, 사회지도층은 원칙주의자가 돼야 한다.
이번 입춘은 조상들이 집안을 치우듯이 각자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구태를 말끔히 청산하고 희망과 꿈의 실현을 다짐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많이 본 뉴스
-
1
'대세는 슬림' 삼성, 폴드7도 얇게 만든다
-
2
삼성·SK 하이닉스 '모바일 HBM' 패키징 격돌
-
3
[ET톡] 퓨리오사AI와 韓 시스템 반도체
-
4
자체 모델·오픈소스·MS 협력…KT, AI 3트랙 전략 가동
-
5
마이크론 공략 통했다…펨트론, 모듈 검사기 공급
-
6
트럼프, 푸틴과 만남 “매우 곧”..EU 보복관세 계획엔 “그들만 다칠 뿐”
-
7
“브로드컴, 인텔 반도체 설계 사업 인수 검토”
-
8
머스크, 챗GPT 대항마 '그록3' 17일 첫선
-
9
천안시, 총 인구수 70만 달성 코앞…작년 7000여명 증가 5년 만에 최대 유입
-
10
속보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여야 합의로 산자위 소위서 가결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