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문화산업 10대 과제>3회-문화상품 유통물류구조 혁신

문화콘텐츠는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적이고 비효율적인 유통구조로 인해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예컨대 「생산-유통-판매-재투자」로 이어지는 확대 재생산의 과정이 실종돼 있는 것이다.

음반·비디오·게임·서적·캐릭터상품 등 오프라인 문화상품들은 대부분 판매가의 20∼40%를 유통·물류비용으로 부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우리 문화상품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유통단계를 간소화하고 발주에서부터 공급, 판매에 이르는 과정을 일괄 전산처리할 수 있는 선진화된 시스템의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은 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통비용이 매출의 40%에 육박하는 음반시장의 경우 「음반기획사-제작사-유통사-도매상-소매점-소비자」로 이어지는 5∼6단계의 복잡한 유통과정이 전체 산업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음반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대다수의 도매상 및 중간 도매상, 소매점들은 5% 전후의 낮은 마진율에 개인사업체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지극히 영세한 실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음반 유통에 있어서의 문제점은 주문에서 공급에 이르는 과정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등 전산화·현대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비디오대여점과 셀스루 판매로 나눠지는 프로테이프시장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7.4%에 달하는 유통비용과 전근대적인 유통구조로 반품 비율이 대형제작사는 30∼40%, 중소제작사는 70∼80%에 이르기 때문에 제대로된 매출계획을 세우기도 어렵고 반품에 대한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판매목표를 맞추기 위해 제작사 영업사원들은 밀어내기·꺾기 등 변칙적인 영업을 공공연히 행하고 있고 덤핑판매가 만연하고 있다.

게임의 경우도 개발사 또는 제작사에서 총판을 맡는 전문유통사, 그리고 도매상에서 소매상, 소비자까지 4∼5단계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특히 게임은 발매 후 판매기간이 짧은 라이프사이클을 갖고 있어 이 기간 안에 제품을 팔지 못하면 사실상 모두 재고로 남게 되고 덤핑으로 연결돼 제대로된 가격질서나 유통질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이같은 불합리한 유통구조는 양질의 상품 생산과 재투자를 가로막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또 비디오CD 및 DVD 등 차세대 영상매체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모든 피해는 결국 새로운 문화를 향유해야 할 권리를 가진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들어 이같은 문화상품의 유통구조를 대대적으로 혁신하고 경쟁력을 높이자는 움직임이 문화산업계 안밖에서 본격적으로 일고 있다.

음반·비디오·서적 등에 관한 「공동물류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제작사·유통업체·판매업체와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대 전근대적인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자는 취지다.

공동물류사업이 가장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곳은 음반분야. 문화관광부의 지원 아래 음반유통사·광명시 등이 공동으로 케이알씨넷(KRCnet·대표 김종덕)이라는 회사를 지난해 7월 설립했다.

이 회사는 앞으로 음반유통 합리화와 구조개선을 위해 오는 2003년까지 4년 동안 총 372억원을 투자, 경기도 광명시와 성남시에 본부 및 중앙물류센터를 설립하고 전국 대도시에 지방 물류센터를 갖출 계획이다. 또 음반제작사와 유통사, 전국 도·소매업체 1800여개를 단일전산망으로 묶어 음반 발주부터 유통·배송에 이르기까지를 원스톱으로 연결하는 판매시점관리(POS)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이 회사는 음반도매상들을 중심으로 주주구성 및 증자를 진행중이며 다음달 중 광명시 철산동에 물류기지본부를 착공하는 한편 성남시 분당구에 중앙물류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이에따라 늦어도 오는 7월에는 케이알씨넷이 제작사로부터 음반을 공동 구매하고 음반도매상들이 이를 유통시키는 초기단계의 음반 공동물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며 연말께에는 시범점포로 선정된 소매점과 POS시스템으로 연결, 전산을 통한 발주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음반공동물류사업은 아직 제작사들이 참여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배정된 33.4%의 지분구성에 이견을 보이고 있어 다소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비디오시장에도 공동물류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지는 못하다. 이보다는 대여점 위주로 형성돼 있는 유통시장을 개선하기 위해 비디오 수익분배제(RSS)시스템 도입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한 실정이다.

현재 비디오직배사인 메이저사들을 중심으로 RSS도입에 대한 워원천적인 합의는 이뤄졌고 이의 유통대행사 지정 및 가맹점 모집 등의 과정만 남겨 놓고 있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비디오제작사가 대여점에 직접 제품을 공급하고 대여 정도에 따라 수익을 나눠갖는 새로운 형태의 유통구조가 정착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참여업체 선정, 작품출시 방법, 수익 분배율을 놓고 업체들간의 이견이 끊이지 않고 있어 확산 노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밖에도 서적분야는 대한출판문화협회·출판인회의 등을 중심으로 서적공동물류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해왔으나 최근 도서정가제 도입을 둘러싸고 온라인 서점과 마찰을 빚으면서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같은 난제들을 서둘러 풀지 않으면 신경제 체제 아래에서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고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욱이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문화콘텐츠가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 위주의 유통체계 개선은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안이 아니라 과제라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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