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기업에서 배운다>1회-인텔의 마케팅

◆「밤 새워 일하기. 한 우물 파기.」 수년 전만 해도 기업들이 성공담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던 대목들이다. 성실과 근면, 근성 등은 지금도 성공의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엔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했다. 뉴 밀레니엄 시대에 기업들이 성공을 위해 갖춰야 할 요소들은 너무도 다양하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들에는 그 영업이나 마케팅, 연구개발, M&A, 아웃소싱 등에서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

나빠지고 있는 수출환경, 돌지 않는 자금 등 국내 기업들의 활동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저돌성이나 주먹구구식 경영방식은 이제 생존방식이 아니다. 본지에서는 해외 현지방문을 통해 성공한 선진기업의 장점을 분석, 연간시리즈로 게재하므로써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첫번째 업체는 CPU 전문업체 인텔이다. 편집자◆

「크레이그 배럿 사장이 연단에 오른다. 어두웠던 조명이 켜지고 최신 팝송이 분위기를 띄운다. 크레이그 배럿 사장은 단련된 스타처럼 기조연설을 뽑아낸다. 사이사이 소개되는 사례 제시와 비디오 인터뷰 등은 지루하기 쉬운 발표회장을 방송국의 이벤트처럼 박진감 넘치게 한다.」

인텔 이벤트에 찾아가면 지루함이 없다. 일반 업체들의 그것과 가장 두드러지는 인텔의 차이점이다. 인텔은 비디오와 오디오, 때로는 코미디 쇼를 방불케 하는 콩트로 참가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인텔 이벤트에 가면 뭔가 있다.

인텔은 제품(Product), 가격(Price), 홍보(Promotion) 및 시장(Place)을 기초로 삼는 마케팅 원리(4P) 가운데 홍보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인텔이 추구하는 마케팅은 경영학 교과서의 기본 원리에 충실하지만 고객의 시선을 유도하는 방법에서 신선하고 재기발랄하다.


인텔의 마케팅은 71년 인텔이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함과 동시에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PC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는 펜티엄 시리즈 성공과 함께 마케팅도 무르익었다.

인텔 마케팅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은 인텔의 브랜드 광고·홍보전략이다. 이 회사는 처음부터 두 종류의 브랜드 광고전략을 전개했다.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대한 자체 제품광고가 하나고 PC광고에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붙는 인텔 인사이드 마크와 「딩딩딩딩」으로 귀에 익은 화성음의 조합이 다른 하나다. 인텔은 후자를 「인텔 인사이드」 프로그램이라 칭하며 91년부터 추진해오고 있다.

자체 제품광고는 다른 기업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최종 소비자와 다소 거리가 있는 PC용 부품업체라는 속성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소비자 광고를 펼쳤다는 점이 독특하다.

인텔은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로 꼽히는 펜티엄Ⅲ의 초기 시장진입 당시 신문, 방송, 인터넷, 유통시장 등에서 일시에 광고를 노출시키는 소위 「동시다발적 마케팅」을 수행해 효과를 봤다.

인텔 인사이드 프로그램은 이 회사 광고마케팅의 진수다.

PC 완제품 광고에 첨가된 인텔 인사이드는 엄밀히 말해 인텔 광고가 아니지만 인텔 자체 광고 이상의 효력을 낸다. 컴팩, 델, 삼성전자, 삼보컴퓨터 등 PC 제조업체 광고에서의 인텔 인사이드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소비자는 오히려 인텔 인사이드가 붙지 않으면 허전함을 느낀다. 처음에는 인텔이 자사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중에는 PC 제조업체들이 오히려 인텔 브랜드를 자사 제품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사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인텔은 이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 PC 제조업체에 최고 60%의 광고지원이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브랜드 조사기관인 인터브랜드(Interbrand)의 「2000년 최고 브랜드 평가」에 따르면 인텔은 코카콜라(1위 725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2위 702억달러), IBM(3위 532억달러)에 이어 브랜드 자산가치 390억달러로 4위에 올랐다. 이는 지난해 매출 34조원에 연간 광고비 6억5400만원 가량을 집행한 삼성전자가 52억달러로 43위에 오른 것과 비교된다.

광고 및 홍보가 마케팅의 포장이라면 제품은 마케팅의 재료가 된다.

인텔은 제품에 있어서 무엇보다 「철저」하고 「정확」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 흔히 말하는 CPU 전문업체다. CPU 하나만으로 인텔은 연간 300억달러(2000년 기준)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유일한 경쟁업체인 AMD 매출의 10배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래서 인텔의 역사는 곧 CPU의 역사다. 세계 PC산업의 역사적인 순간마다 인텔은 그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펜티엄 시리즈는 인텔 CPU 제품에서도 가장 성공한 제품으로 통한다. 비록 최근에 칩세트 주메모리를 연결하는 메모리트랜슬레이터허브(MTH) 결함, 펜티엄4의 출시 지연 등으로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갔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통해 인텔의 위기관리능력은 더욱 빛이 났다.

제품결함을 발견한 인텔은 우선 결함을 시인하고 자진해서 제품 리콜을 발표했다. 인텔은 또 지난해 10월초 본래의 핵심사업인 CPU부문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자 기존의 앨버트 유(Albert Yu) 수석부사장을 경질하고 폴 오텔리니(Paul Otellini)에게 전권을 일임했다. 아울러 마이클 스플린터(Michael Splinter)를 인텔 기술·제조그룹에 영입해 개발분야를 일신하는 이미지 변신을 모색했다.

가격에 있어서도 인텔은 전략적인 마케팅을 구사했다. 인텔이 거의 독점적으로 CPU를 공급하던 시절에 볼 수 없었던 가격변화가 99년 말부터는 매월 조정되는 양상을 띠었다. 이유는 물론 AMD의 제품출시와 가격변동을 고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격을 조절하더라고 AMD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고가품이라는 인식을 지속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인텔의 마케팅은 조직적인 면에서도 일반 업체와는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케팅이 한 기업내 별도 조직으로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면 인텔은 브랜드 마케팅을 전담한 부문이 존재하기는 하되 각 사업부(business group)의 판매·영업인력이 마케팅도 함께 맡는 세일즈 마케팅(sales marketing)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개개인에게는 최대한의 업무 재량권이 주어진다. 반면에 인텔이 내부 운동으로 추진하는 6가지 가치(value) 중 「엄격한 전문가주의(discipline)」와 「결과지향(results orientation)」이라는 덕목으로 알 수 있듯이 결과에 대한 평가는 엄격하다.

마케팅을 포함한 조직관리는 직원 개개인에 대한 교육에서 나온다.

인텔은 마케팅은 물론 사업 전분야에 걸친 내외부 교육을 운영한다. 「인텔 유니버시티」 같은 내부 교육은 개인의 신청에 따라, 외부 교육은 개인이 지원하면 회사가 일정 부분 분담하는 방식으로 트레이닝을 돕는다.

인텔 유니버시티에는 마케팅과 관련한 20여개의 커리큘럼이 개설돼 있으며 긍정적인 협상방법을 교육하는 「네고시에이팅 투 예스(negotiating to yes)」 등은 실제 업무스킬과 관련된 부분이다.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인텔은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롤 플레이(role play)를 통해 교육의 결과를 점검한다.

「CMR」 같은 마케팅 조직내의 시장 및 소비자 조사기능도 마케팅의 효율을 높이는 방편이 되고 있다.

<김인구기자 cl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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