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지 500대 기업에 여러 한국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그 중 삼성전자는 지난 99년 270억달러의 매출로 전기·전자산업부문에서 모토로라, 인텔 다음으로 세계 1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통계청에서 발표한 99년도 OECD 29개 회원국의 주요 통계지표를 보면 세계 속의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국내총생산 10위, 경제 성장률 1위, 수출 10위, 인구 100명당 이동전화 가입자수 7위, 인터넷 이용자수는 10위로 상위권이다. 반면에 인구당 의사수는 22위, 평균수명은 27위 그리고 교통사고 사망률은 2위를 차지해 불균형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 현상은 우리 의식에도 있다. 세계화를 지향하지만, 균형 잡힌 세계화는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TV에서 감동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보았다. 교통사고로 목 아래가 마비된 한국인이 미국 법조계의 부장검사로 활약하는 것이었다. 외국에서는 한국 사람이 사업도 하고 교수도 되지만, 국내에선 외국인에게 여러가지 제약이 많다. 이제는 냉철히 장래를 직시하고 과감히 생각의 문을 열 때가 되었다. 우리는 이미 세계화라는 큰 흐름에 들어와 있고 우리가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오히려 낙오자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졌다. 언제 어디서나 거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외국에서 우리시장을 쉽게 공략할 수 있고, 우리도 세계로 쉽게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이럴수록 생각을 세계화하고 교육 시스템을 국제화시키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일본의 외국인 학교에는 학생의 80% 이상이 일본인이다. 미국계 학교가 동경에만 10여개가 넘고 중국·프랑스·독일·스페인계 학교도 있다. 이들 학교에는 선발 기준에 맞으면 누구나 입학이 가능하다. 흔히 일본인은 영어에 서툴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학교 출신은 완벽한 영어에다 제2 외국어까지 구사하며 어려서부터 외국문화를 접해 온 세계인으로 커간다. 우리 다음 세대가 세계 무대에서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또한 외국 기업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변화해야 한다. 몇년전 일본에서 일본 IBM과 미국 도요타 중에 어느 것이 일본 기업이냐는 논란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결론은 당연히 그 나라 안에서 활동하며 세금을 내는 기업이 국익에 도움을 주는 기업이라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이처럼 명확하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아직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특히 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투자해 이익이 나면 세금을 낸 후 본사로 이익을 송금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기업이 사회사업을 하는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주주에게 이익을 환원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텐데, 외국기업이 돈을 벌면 괜히 배가 아프다.
그러다보니 국내에서 건실한 사업으로 높은 수익을 내는 외국기업에는 고민이 된다. 만약 이들이 본사에서 수입하는 물건 값을 적정가격보다 고가로 수입하면 이익이 현지에서는 거의 나지 않게 되고 본사에 송금할 필요도 없어 과실송금에 대한 따가운 국민감정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같은 경우를 막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외국기업이 장기간 이익을 내지 않고 사업을 할 때에는 오히려 세무 사찰을 강화한다고 한다. 부당하게 고가로 수입해 모든 이익을 본사에 남기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정당한 가격으로 수입해 현지에서 적정 이익을 내고 그 중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내는 기업에 오히려 과실송금이 많다고 비난하기보다는 칭찬을 해주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최근 우리의 국세청도 이제는 외국기업을 선진국과 같은 시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한다. 다행한 일이다.
우리가 외국기업의 과실송금에 감정적으로 대처하면 오히려 받을 세금을 받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무엇이 국익에 보탬이 되는지를 헤아려 합리적인 사고로 우리의 국민정서를 다스릴 필요가 있다.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남과 더불어 함께 잘 살아가려면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디지털사회의 세계화는 결국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할 줄 아는 열린 생각과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김형회 (주)바이텍씨스템 회장(hhkim@bite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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