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e코리아]노벨상 만들기-기초과학 푸대접이 문제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순수 기초연구의 몫이었던 노벨상이 지난해 응용과학과 상업화로 이어지는 실용적인 연구분야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물리학상을 수상한 화합물 반도체와 레이저 다이오드, 집적회로 반도체칩 등은 현대 정보통신산업에 없어서는 안될 핵심 원천기술이다. 휴대폰·PC·세탁기·인공위성·인터넷·광통신 등 우리 주변의 일상용품과 산업용품에서 이들 기술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것도 주변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없으면 아예 그같은 제품과 기능의 탄생이 어려웠을 정도다. 또 화학상을 수상한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도 고분자를 이용한 2차전지로 상업화에 응용돼 휴대폰과 PC는 물론 나아가 차세대 전기자동차의 연료전지 등으로 활용 폭을 넓혀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학기술 현실은 어떤가. 「기초연구 따로, 응용연구 따로, 생산기술연구 따로」하는 식으로 연구영역을 놓고 연구개발보다 치열한 탁상공론을 일삼아 온 현실을 고려하면 노벨상 수상을 위해 냉철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응용과학과 실용성을 기반으로 한 선진 정보통신산업 따라잡기에 급급해 기초과학은 갈수록 외면당하고 가시적 결과물이 없다는 이유로 푸대접을 받기 일쑤다.

정진하 서울대 분자생물학과 교수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짧은 기간내에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며 『국가 혹은 대학, 기업의 유기적이고 장기적인 토털 마스터플랜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기초과학은 10년이 지나도 제자리 걸음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당장 산업에 응용할 수 없다 하더라도 기초과학의 연구성과는 응용과학의 밑거름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인력양성 문제다. 이와 관련, 이영욱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어린 학생들은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다른 어느 나라 학생들보다 많고 실력 또한 뛰어나다』며 이들을 훌륭한 과학자로 제대로 양성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예산이 선진국에 비해 규모면에서 절대적으로 열세라 하더라도 이는 효율적인 분배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며 『기초과학의 대형과제에 대한 투자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인데 이런 상황에서 우수한 인력이 배출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즉 과학영재들이 마음껏 자신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과대학을 지망하는 수많은 인재들 가운데 특별한 재능과 창의력을 갖춘 인재들이 의사보다는 의과학자(medical scientist)를 지망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제도적으로 여건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역량 제고를 위해 연구성과를 단기적·수량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연구내용의 수준과 질적 성장에 관심을 갖고 기다리는 자세를 촉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하영칠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기초과학을 제대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며 『응용과학과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꼬집었다. 하 교수는 『기초과학의 영향력 있는 논문 한 편이 가진 잠재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제반 여건은 아직 「노벨상」이라는 큰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리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기초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첫번째로 꼽고 있다.

기초과학이 소수 과학자들만의 고상한 신선놀음이 아니라 기초과학의 새로운 발견은 엄청난 기술혁명을 가져오며 나아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유창모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과학과 기술」지 기고를 통해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깨진 독에 물붓기처럼 흔적도 없이 들어가지만 이들에 대한 투자는 결국 국가의 이익으로 크게 돌아온다는 것을 선진국 사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정부의 기초과학 선진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대한 강한 의지와 이를 위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연구인력 및 연구비 규모로 볼 때 선진국에서 수행하고 있는 모든 분야를 동등하게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미 국제경쟁력을 갖춘 과학자들을 엄선, 이들을 중심으로 과학엘리트집단을 형성해 선진국 수준의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집중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사단법인 노벨과학상수상지원본부 정호선 대표는 『우수한 영재를 조기에 발굴하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학계가 똘똘 뭉쳐 지원해야 한다』며 『기초과학을 발달시켜 원천기술을 보유하지 않고는 치열한 세계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은 수상자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기초과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지표다. 또 기초과학의 발전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 우리가 21세기 초반에 「eKorea」라는 지상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도 노벨상 수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비옥한 땅이 마련되면 큰 열매를 얻은 것은 시간문제라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되는 시점이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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