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벤처기업의 명암

『몇달전 극적으로 대형 펀딩에 성공, 자금에 여유가 많다는 소문이 업계에 퍼지면서 하루에도 수십군데에서 투자요청과 인수합병(M&A) 문의가 몰려들어 업무가 마비될 지경입니다. 요즘엔 본 업무보다도 여기저기서 들어온 IR자료를 검토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마치 제가 벤처 사장이 아니라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된 기분입니다.』(A벤처 사장)

『지난 봄부터 추진해온 펀딩이 때마침 코스닥침체와 벤처위기론에 부딪혀 성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들어서는 자금이 바닥나 업무를 뒤로 미룬 채 자금확보를 위해 투자가들을 만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벤처캐피털이나 투자기관을 대상으로 설명회만 수십번 하다 보니 이젠 IR자료를 달달 외울 정도입니다.』(B벤처 사장)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창업한 후 벤처붐을 타고 거침없이 성장해온 두 벤처기업. 두 업체 모두 동종업계에서는 기술력과 마케팅력을 갖춘 장래가 촉망한 유망벤처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긴 벤처조정기 속에서 자본시장이 냉각, 펀딩 결과에 따라 이처럼 명암이 확연하게 엇갈리고 있다.

특히 요즘들어서는 자금경색이 더욱 심화되면서 벤처업계에는 올해 펀딩에 성공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과의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펀딩에 성공한 기업은 여유자금을 바탕으로 일시적인 현금 유동성 문제로 위기에 빠진 유망 벤처기업의 지분을 거의 거저 확보할 수 있는 데 반해 펀딩에 실패한 기업은 이리저리 자금을 구하기 위해 벼랑끝 곡예를 계속하고 있다.

펀딩을 하고 못하고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기술력이나 성장성이 좌우한다. 그러나 최근 상당수 벤처기업들은 펀딩의 타이밍을 놓쳐 실패한 경우가 많다. 시장이 좋을 때는 충분히 펀딩을 하고도 남을 업체들이지만 벤처캐피털 등 투자기관들이 지극히 소극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탓에 많은 업체들이 극심한 돈가뭄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타이밍의 미학(美學)」이라는 벤처비즈니스. 지금 벤처업계는 이 짤막한 교훈을 매우 비싼 값을 치르며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는 것 같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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