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주룽지 중국 총리가 한중회담을 갖고 중국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사업에 한국기업이 참여할 기회를 갖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이것은 무기 연기된 중국내 제2이동통신사업자 차이나유니컴의 장비입찰이 재개되면 한국의 장비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합의문구나 그 의미를 들여다 보면 지난 98년 중국방문 때 김 대통령의 CDMA기술 도입 요청에 대해 중국정부가 수용하도록 하겠다고 했던 수준에서 거의 진전된 것이 없다고 본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이번 합의는 98년의 한중 정보통신분야 협력 합의를 2년 만에 다시 확인하는 선에서 그친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주 총리의 이번 입장표명 내용은 극히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중국은 아직까지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차세대 이동통신사업에서 어느 시기에 어떤 기술을 채택할 것인가에 대해 아무 것도 결정한 바가 없다고 한다. 전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리 정부나 장비업계가 고대하고 있는 차이나유니컴의 입찰내역과 재개시기조차도 확정되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한술 더 뜨자면 주 총리가 CDMA기술을 공급하고 싶어하는 한국 정부나 기업들에 유리한 입지를 제공해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CDMA는 현재 IMT2000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정부와 장비업계 그리고 희망사업자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동기식·비동기식 선택의 문제와 직결되고 있는 기술이다. 이것은 또한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을 놓고 세계적으로 미국식과 유럽식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과도 맞닥뜨려져 있다. 이런 양상들을 종합하면 「CDMA(동기식)-정부-장비업계-미국식」이 한묶음이고 「비동기식-희망사업자-유럽식」이 그 반대편에 서는 묶음이 된다. 국내 상황으로 좁혀보면 정부와 장비업계는 산업의 균형발전과 수출시장 개척을 위해 동기식을, 희망사업자들은 세계적인 기술흐름과 시장성을 내세워 비동기식을 각각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김 대통령과 주 총리간의 합의는 그 내용의 충실도 여부를 떠나 IMT2000의 기술방식을 놓고 최소한 1개 희망사업자에 대해 동기식 선택을 강제하려는 정부와 장비업계에 큰 원군이 돼준 셈이다. 이번 합의된 내용이나 의미를 냉정하게 고찰해 보고자 하는 의도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본란을 통해서 IMT2000 기술방식은 이 사업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당장 수출에 타격을 받는다는 식의 단순 상황논리나 이해관계보다는 시장논리에 따라 사업자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누차 강조해 왔다. 중국정부가 지난 3월 여러 이유를 들어 차이나유니컴의 CDMA 장비입찰 프로젝트를 무기 연기시킨 것도 나름대로는 이같은 원칙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적인 추세와 시장논리에 적합하며 나아가 해당 사업자에 이익이 된다면 그것이 동기식이든 비동기식이든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경계하고자 하는 바는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번 한중 합의내용이 어떤 형태로든 IMT2000사업자 선정과정에 영향을 미처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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