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용 국제부장 (jypark@etnews.co.kr)
전기·전자산업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하다. 일본업체들은 전세계 시장을 상대로 전자제품이나 부품 할 것 없이, 그것도 하이엔드 수요를 장악해 가면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전기·전자산업을 주력산업으로 내세워 국력을 키워나가려던 우리에게 일본은 항상 넘어야 할 하나의 벽으로 남아 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IT산업에 대한 일본의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다. 디지털 휴대전화나 PC보급률, 인터넷인구, i비즈니스 활성화 등 전반적인 면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때문에 IT산업을 논할 때 일본이 무시당하곤 한다.
실제로 일본 내부에서도 IT산업이 한국보다 1∼2년 뒤져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기업을 위시한 밴처기업들의 활동이 세계의 주목을 받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이 신경제로의 이행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외신을 접해 보면 일본도 움직이고 있다. 단지 서두르지는 않고 기반을 탄탄히 다져가고 있을 뿐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 IT분야의 부각과 함께 소외되고 있는 일반 전기·전자산업까지 소홀함 없이 다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 두려울 정도다. 일본 정부와 기업, 기업과 기업간의 국익을 앞세운 다양한 협력은 오히려 전기·전자, 컴퓨터, 통신, 인터넷이 하나로 묶일 미래를 감안할 때 예상보다 큰 경쟁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일본의 잠재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하는 부문이 무선인터넷분야다. 그들은 유선부문에 집착하기보다 무선 쪽에 주력, 이제 무선인터넷분야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다. i모드를 비롯, 일본의 무선인터넷서비스 이용인구는 올해안에 1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서비스에 사용되는 콘텐츠 종류도 1만개가 넘는다. 최근의 흐름이 무선인터넷으로 급격히 변화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들의 안목에 놀랄 수밖에 없다.
무선인터넷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고 하지만 IT분야에서 다소 출발이 늦었다는 것은 일본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 이때문에 일본의 모리 요시로 총리도 취임초부터 「IT정부」를 내세우고 있다. 자문기구로 전자정보기술(IT)전략회의를 구성해 놓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 기구에 「IT국가전략」 마련을 지시해 놓고 있다. 이 자문기구는 이달말이면 「IT일본」을 만들기 위한 강령을 내놓는다. 이들의 목표는 막연히 IT강국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IT국가인 미국을 5년내에 따라잡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19일 일본정부가 IT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 내놓은 12조엔 규모의 경기부양책도 IT일본을 만들기 위한 또 다른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은 국가 경제력이나 개별 기업의 경영, 기술능력 면에서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IT산업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전기·전자정보통신산업에 내재돼 있는 잠재력은 엄청난 출력을 가진 자동차에 비유할 수 있다. 특히 우리에게는 서로 경쟁자로 보이는 소니와 NEC의 디지털TV용 부품 공동개발, 샤프와 미쓰비시의 PDA부문 협력이나 다수 가전업체들의 디지털가전, 가전에 적용할 웹기술 공동개발에 협력하는 모습들은 부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자고 일어나면 변화된다는 IT산업이지만 결코 단기적으로 승부가 나지는 않는다. 따라서 남보다 강한 출력을 가진 고성능 차량인 일본이 가속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나라라고 추월권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CDMA기술을 자랑하고 차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의 실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일본은 무선통신분야의 경우 IMT2000 이후의 4세대 이동통신 주도권을 겨냥한 작업에 나설 만큼 탄력있게 움직이고 있다.
IT산업이 가진 특성 중에 하나가 국가라는 울타리에 가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깝게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시장을 겨냥해야 하는 우리에게 정부 주도하에 산업기반을 마련하고 경쟁업체간 제휴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는 일본은 벅찬 상대일 수밖에 없다. 일본은 IT산업분야에서 결코 잠자는 거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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