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남북한 IT협력과 전략물자 반출

김연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남북 정상회담이후 북한의 정보기술 산업분야는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특히 하드웨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소프트웨어 산업 협력은 상생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90년대이후 고속성장을 하고 있지만 인건비 상승이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 역시 이 분야가 설비투자의 비중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성장주력분야로 생각하고, 조선콤퓨터센타(KCC)를 중심으로 우수 인력을 이 분야에 중점 배치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 정보기술 협력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전략물자 반출제도다. 정부는 남북경협에서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을 고려해 신소재·전자장비·통신·정보보안 등 대외무역법상의 전략물자 관련 사업을 반출 제한품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한국이 96년에 회원국으로 가입한 바세나르 협정이라는 국제협약에 기반하고 있다. 바세나르 협정은 냉전시대 수출통제체제인 대공산권 수출통제체제(COCOM)를 대체한 것이다.

남북경협에서 바세나르 협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 협정이 북한과 같은 분쟁우려국에 이중용도품목의 수출을 제한하는 규정 때문이다. 이중용도란 군수용으로 사용될 수도 있고, 민수용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품목을 말한다. 현재 용도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486급 이상 컴퓨터의 대북반출을 금지하는 것은 이러한 규정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전자·전기·통신 분야의 기술집약적 설비 중 상당부분은 이중용도 품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세나르 협정이나 그것의 국내입법인 전략물자 수출입 제도가 민감기술의 군사적 전용을 막는 데 목적이 있지, 평화적인 산업용 이전 자체를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용도 판정의 문제다. 보수적으로 용도판정을 할 경우 기술 집약적 남북경협은 불가능하다.

물론 정부가 정상회담이후 달라진 남북관계를 고려해 합리적인 용도판정을 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바로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다. 미국은 비확산 통제물자 및 기술을 불법적으로 유출한 국가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생산장비, 공작기계, 통신장비 등 고도기술 제품의 대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한 반출시, 미국 성분이 10% 이상 포함된 이중용도 제품에 대해서는 미국 상무부의 수출관리국(BXA)이 규정하고 있는 이중용도 상업제품 및 기술 데이터의 수출, 재수출에 대한 관할권 저촉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테러지원국 해제를 하고 경제제재를 완화하지 않는 이상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남북기술협력은 어렵다. 부품이나 기술 로열티의 대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1978년 구소련의 잠수함에서 발견된 도시바제 프로펠러 때문에 도시바는 문을 닫을 뻔한 적이 있다. 이른바 미일 통상문제의 주요사례인 「도시바 스캔들」이다.

물론 향후 북미관계는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조명록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북미 관계의 쟁점인 핵이나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점차적으로 개선되겠지만 아직은 남북 정보기술분야의 협력이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하는 이유다.

민감기술의 군사적 전용을 방지하면서도 본격적인 제조업 분야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용도판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전략물자의 반출을 금지하기보다는 민감품목의 북한내 용도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의 기술협력을 추구하는 기업들 역시 기술 및 핵심부품의 용도 투명성을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북사업을 경제외적 변수들이 많다고 해서 포기할 필요는 없지만 지나친 낙관도 금물이다. 정보기술 분야에서 불고 있는 대북사업의 열기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좀더 차분하고 신중한 사업 타당성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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