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디자인 시비

올해 국내 전기밥솥 시장이 사상 처음으로 2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대당 판매가를 10만원씩만 잡아도 2000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흔히 5대 가전으로 일컬어지는 TV·VCR·에어컨·세탁기·냉장고 등을 제외하고 이처럼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가전제품은 없다. 누구나 군침을 흘릴 만한 시장이다.

사실 전기밥솥 시장이 이처럼 큰 규모로 성장하게 된 데는 중소업체들의 기여가 컸다. 성광전자·대웅전기산업·부방테크론 등은 제품력에다 전국적인 규모의 판매 및 AS망까지 갖추는 한편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위해 수억원대의 TV광고까지 제작하는 등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사양산업으로만 보이던 전기밥솥 시장이 의외의 성장세를 구가하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뒷짐만 지던 종래의 태도를 버리고 공세적인 자세로 전환, 중소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지난 7월말 삼성전자가 내놓은 스테인리스형 전기밥솥은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부동의 1위였던 성광전자 제품을 따돌리고 판매율 1위를 탈환하는 기염을 토했다. 중소업체들도 『디자인만큼은 대기업의 감각을 따라가기 어렵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 이 제품의 디자인이 일본 미쓰비시의 전기밥솥 신제품 디자인과 흡사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측은 『자사 전기밥솥 제조법인인 노비타를 통해 신규로 디자인한 제품이며 디자인 도용은 절대 사실무근』이라고 잘라말하지만 실제 매장에서 두 눈으로 직접 제품을 비교 확인하면 삼성전자의 주장은 옹색하기만 하다.

디자인 도용이 사실이라면 왜 하필 일본 대기업의 제품과 유사한 디자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배경이 궁금하다.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신제품을 출시하며 이 정도 시장조사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삼성 같은 대기업이 왜 중소업체에나 적당한 소형가전 사업에 연연하느냐는 얘기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삼성전자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이번 문제가 한일 대기업간의 디자인 도용 시비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생활전자부·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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