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 논설위원 jsuh@etnews.co.kr
인터넷을 통해 고객이 필요한 애플리케이션과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가리켜 ASP(Application Service Provider)비즈니스라고 한다. 여기에는 시스템 컨설팅과 구축, 운영, 유지보수, 고객서비스를 비롯해 인터넷 접속과 같은 관련된 제반 서비스가 모두 포함된다. 이 개념은 미국에 이어 올초부터 우리나라에 상륙해 또 하나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오라클의 한 마케팅 자료에 의하면 같은 조건에서 ASP서비스를 선택했을 때 고객이 얻는 비용 이익은 3년을 기준으로, 시스템을 직접 구축(로컬 구축)했을 때보다 3배나 된다고 한다. 공급사 입장에서도 ASP서비스는 인력운용 효과 등을 따져볼 때 로컬 구축에 비해 크게 유리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른바 기업과 고객이 모두 득되는 윈윈형 비즈니스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ASP비즈니스 전문(full service) 기업만 30여개, 일부나마 이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곳이 200여개나 출현했다.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단체가 결성되는가 하면, ASP가 IT산업 발전에 새로운 계기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보고 관대한 정책적 배려를 아끼지 않겠다는 당국의 입장도 나왔다. 불과 몇 달전 개념이 도입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상황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ASP서비스가 요즘 들어서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최대 고객층으로 예상됐던 중소기업의 경우 기업정보화 차원에 대한 이해부족 등으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때나마 관심을 보였던 일반기업들도 현 단계에서의 서비스 수준이나 시스템 가용성, 그리고 데이터 보안성 등이 담보되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후죽순격으로 급조된 사업자들의 기업안정성에 대한 불신도 불같이 타오르던 ASP에 대한 관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서 지난 8월 발표된 가트너그룹의 보고서는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보고서는 올해 36억달러 규모인 세계 ASP시장이 마이크로소프트(MS)·오라클·SAP 등과 함께 AT&T·델 등 거대 기업의 참여로 오는 2004년 253억달러로 성장한다는 장밋빛 예측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예측에는 몇가지 단서가 붙는다. 현재 480여개에 이르는 ASP 전문기업은 내년중에만 60%가 도산하거나 타 기업에 합병돼 결국 20여개로 압축되며, 100개 정도는 일부 서비스 제공기업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냉정하게 되돌아보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몇가지 사실이 튀어나온다. ASP비즈니스가 처음부터 고객 입장보다는 공급자 위주로 서비스 개념이 설정됐다는 점, 서비스 주력이 될 ERP나 그룹웨어 시장은 이해가 부족한 중소기업을 제외하면 이미 포화상태라는 점, MS·오라클·선·델 등 전통적인 거대 IT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사실을 가트너그룹 보고서와 연계시키면 다시 설득력 있는 몇개의 추론이 가능해진다. 살아남을 20개사는 MS 등 모든 것을 갖춘 거대기업이며 이 과정에서 다수가 이들에 흡수된다는 것이다. 2004년의 시장규모 역시 범위를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인데 가령 AMR리서치의 경우는 가트너그룹보다 5배나 작은 47억달러로 보고 있는 것은 좋은 예다. 실제로도 서버와 네트워크 등 하드웨어 부문을 제외하면 ASP서비스 본연의 매출은 훨씬 줄어든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ASP비즈니스에 대한 성격을 예컨대, 야후나 아마존 등을 배출시킨 인터넷처럼 신생 비즈니스로 보느냐, 시장포화 상태를 극복하려는 기존 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이미 분명해졌다. 가트너그룹의 보고서가 전하려는 최종 메시지 역시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문제는 매번 새로운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자의든 타의든 이을 이용해 정책적 돌파구를 찾거나 기업적 야망을 실현시키려는 당국이나 일부 기업의 자세일 것이다. ASP분야에서만큼은 다수가 희생될 수 있는 거품논쟁이 재현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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