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이 올해 전세계 증권시장 중 하락률 1위(61.66%)를 기록하는 가운데 벤처업계의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투자의 밀물과 썰물은 어느곳에서나 존재하고 반복되지만, 문제는 이런 일을 처음 겪는 신생업체들이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그들은 무척 당황하고 허둥대고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예리하고 단호하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업체들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요란한 팡파르와 함께 문을 열었던 21세기 첫해가 너무 거품이 심했다는 후회가 나오는 가운데 벤처업계의 생존경쟁이 시작됐다. 대다수 업체들의 경영목표는 「성장」에서 「생존」으로 바뀌었다. 이미 10∼20년 된 중견업체들에도 생존이 지상목표가 됐다. 창업이후 현재까지의 기업역사를 社史(company history)에 담기로 했던 중견업체들은 그 계획을 유보 내지 포기하고 있다.
『회사의 생존이 불투명한데 기업 사사가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어려울 때일수록 기업역사를 정확히 기록해 차후 경영에 참조해야 한다는 필자의 말에 되돌아오는 대답이다.
사실 사사는 최고의 PR도구다. 누구도 역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기업의 역사가 거짓이면 그 기업의 존재도 거짓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사는 PR이상의 가치가 있다.
지난 97년 3월 31일 폐업하면서 『모든 죄는 경영진에게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 직원들을 선처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해 일본국민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야마이치(山一)증권은, 그해 8월에 「야마이치증권 100年史」를 발행했다. 직원 몇명이 마지막까지 남아 사사 발간작업을 마친 것이다. 그들이 만약 기업PR차원에서만 사사를 준비했었다면, 폐업과 함께 사사도 내동댕이쳤을 것이다.
지난 98년말 현대자동차와의 합병이 결정된 현대자동차써비스도 이듬해초 <현대자동차써비스의 30년>을 발간했다.
『이런 마당에 사사가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래도 사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이견(異見)이 임원회의에서 오고 간 후 인쇄된 사사가 이미 뿔뿔이 흩어진 직원들 앞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도 역사는 남았다.』
사사의 진정한 가치는 「기록」이다. PR는 일순간에 사라지지만, 기록은 영원히 존재한다. 기록하지 않은 역사는 단지 몇몇 사람의 기억속에 존재하다가 그들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도 없는 것이다.
유귀훈(company historian) yug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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