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정통부 고육지책 - 정책 신뢰성 타격

차세대이동통신(IMT2000)사업 허가신청을 다음달로 한달 연기한다는 정통부의 방침은 기술표준을 싸고 진퇴양난에 처한 정부의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정통부가 사업자 및 장비업체 사장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를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이긴 하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신청 일정 연기를 결정한 상태여서 정부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정통부로서는 기술표준에 관한 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 처지에 몰려 있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단일표준을 결정할 당시 온 나라가 찬반 둘로 나뉘어 떠들썩했던 전례를 감안, 이번만큼은 업계 자율에 의한 표준선택을 정책지표로 강조해왔다.




그 이면에는 CDMA의 대표성을 인정받는 2개 이상의 국내기업들이 동기방식을 채택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는 오판으로 판가름났고 급기야 정통부 고위 관료들이 나서 한국통신과 SK텔레콤에 동기식을 받아들이도록 직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들은 비동기 선택을 굽히지 않았다. 몸이 단 정통부는 『일단 동기를 선택하되 추후 시장 상황을 감안, 비동기로 바꿀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두겠다』는 일종의 절충안을 사업자(정확하게는 SK텔레콤)에 전달했다.




정부로서는 거의 최후의 카드를 꺼낸 셈이지만 SK텔레콤을 비롯한 한국통신, LG그룹은 약속이나 한듯이 「마이 웨이」를 외치면서 이달 25일 사업허가 신청 일정에 맞춰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비동기를 전제로 한 사업계획서 인쇄작업에 돌입했다.




정부의 갑갑함은 「업계 자율 합의」를 강조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같은 상황은 사업허가 일정상 기술 표준을 조율할 데드라인을 이미 넘어선 것이다. 사업자들이 비동기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경우 「동기 포함, 복수표준」이라는 정부정책은 완전 실종되고 「3비 사업자」를 허가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더 큰 고민거리가 앞을 가로막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허가 신청 시한 연장이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시간을 벌고 좀더 적극적인 동기 유도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일정 연기방침으로 정책 신뢰성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통신업계의 이해가 엇갈리는 판에 이를 적절히 조율해야할 정부가 스스로 일정 변경이라는 후퇴수를 둔 것이다.




물론 정통부는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 정통부 고위관계자는 『그간 직간접적으로 사업자들에게 동기를 선택해 주도록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의 물밑조율 작업을 인정했다.




그는 『그러나 성과가 없었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이 난무, 이제부터는 기술표준을 공론화시켜 보겠다는 의미에서 일정을 연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자와 장비업체가 공식적으로 기술표준을 협의하고 어떠한 안이건 단일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출하도록 여건이 마련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술표준 결정과정을 공개하고 여론의 검증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SK나 한통을 동기로 돌리기 위한 정부의 카드가 모두 제시된 상황에서 일정을 한달 뒤로 늦춘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다는 지적은 정부에게 「아픈 대목」이다.




어차피 비동기 일색인 사업자들과 동기를 주장하는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 장비업체와의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정부도 알고 업계도 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정부가 직권조정에 나서기 위한 명분을 축적키 위해 일정을 연기하고 업계 협의내용을 공개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어차피 자율 조정이 안될터이니 그 때에 가서 정부가 자연스럽게 전면에 나서 표준을 조정한다는 시나리오다.




또 다른 일부에서는 정부가 업계 자율 합의의 불가능을 들어 IMT2000 주파수 공고시 아예 동기와 비동기 주파수를 나눠 할당 공고를 함으로써 사실상 강제 조정을 추진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제는 어떤 경우이건 「반발」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정부가 특정 표준을 민간기업에 강제할 경우 시장 원리 위배라는 거센 반론에 직면할 것이다. 해당기업이 정부안을 끝까지 거부한다면 현행법상 정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괘씸죄에 걸어 조치하는 방안이 있겠지만 이는 아날로그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시장이 당장 벌떼처럼 들고 일어날 것이고 정부도 뒷감당이 쉽지 않다.




주파수를 동기, 비동기로 구분해 공고하는 대안은 더욱 실현 불가능이다. 업계의 표준이 결정된 이후 이에 따른 주파수를 할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기술표준을 유도한다면 이는 편법이며 기존의 정부정책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앞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번 정통부가 어떤 묘안을 들고 나올지, 관련기업들의 논리전쟁이 어디까지 비화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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