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벤처기업, 자기 도취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카나스 손덕열 사장

벤처기업의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만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벤처기업들은 작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일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후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 틈새시장 공략도 훨씬 수월했다. 조직 구성의 견고함과 구성원 개개인의 열정도 기존 기업들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러한 경쟁우위 요소를 바탕으로 한 벤처기업들의 활동은 그야말로 생기발랄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신기술 개발, 전략적 제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신규사업 진출소식이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 경제가 회생하는 데 정서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벤처기업들이 그동안 시장원리에 맞게 합리적으로 활동했는 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한바탕 벤처열풍이 지나가고 사업성에 대한 냉혹한 평가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벤처기업이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는 벤처기업들에게 벌써부터 성과를 묻는 다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 벤처기업들에게 문제점이 있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가 없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도 시장이 있어야 빛이 난다. 뛰어난 기술력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 낼 때 사업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기술에 시장을 맞추려 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저 짐작하는 수준에서 예상한 시장을 향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충고라도 하려면 그들의 강한 신념에 맞닥뜨려 객관적인 비판이 불가능해진다.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오히려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인다. 그야말로 자기도취 상태에 빠진 것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뛰어난 기술력이 있다고 믿기에 벤처기업들의 자신감은 컸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벤처기업들이 하루 빨리 자신들의 사업을 알리고 싶고,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한다. 이렇다보니 마음은 더 조급해져서 시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미완성의 제품을 출시하고, 체결되지도 않은 계약을 발표하기도 한다. 열악한 자금사정은 이를 더욱 부채질한다. 조급한 마음에 기술력이나 제품력에 의한 경쟁보다는 마케팅으로 승부를 내려한다.

풋풋한 향기를 간직해야 할 벤처기업들이 자기도취에 빠지게 되면서 벤처의 본질은 퇴색해 버리는 것이다. 필자는 97년에 창업하여 IMF체제라는 악조건 속에서 기업을 경영해 보았다. 그 악조건 속에서 얻어낸 결론은 기업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기술이며, 그 기술을 실존하는 시장상황에 맞게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서 기업이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나치게 먼 장래의 시장만을 바라보면서 제품을 개발한다거나, 있지도 않은 신기루 같은 시장을 향해 목마르게 달려갈 일도 아니다.

세인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면서도 건실한 벤처기업들은 많다. 대부분 실존하는 시장을 향해 조용히 기술개발에 땀흘려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꿈만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기업들이다.

벤처는 말 그대로 모험을 하는 것이다. 조그만 실패없이 성공한 기업가는 없다. 실패를 통해 앞으로의 방향과 비전을 재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실패없이 성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분야의 고급 기술력과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도취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물안의 개구리식 경영을 탈피해 보다 넓고 냉철한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며, 면밀한 계획하에 기술개발과 과학적 경영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인정받는 신 벤처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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