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상

최근 세계 각국 통신사업자들의 유무선 통신 네트워크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힘과 경제로 지배하던 시대가 지나고 21세기를 맞아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전신기를 시작으로 발달해 온 정보통신산업은 20세기 말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만개하고 있다. 이 산업은 유무선전화와 고속정보통신망, 케이블망, 위성통신망 등 각각의 네트워크가 하나로 통합되는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보통신 네트워크는 국경을 무의미하게 만들면서 세상을 하나로 묶어나가고 있다.

글로벌화를 내세우며 자신의 영역을 극대화하려는 각국 정보통신 사업자들의 움직임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장악하는 것이 미래를 장악할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 제패를 위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업체는 독일 도이치텔레콤이다. 이 회사의 최근 일련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다.

도이치텔레콤은 특히 미국 정보통신시장 진출에 집요하게 나서 지난 3월에는 미국 통신업체 퀘스트커뮤니케이션스와 US퀘스트 인수를 추진했다. 4월에는 자회사를 통해 영국의 IMT2000사업권을 확보했으며 미국 3대 장거리 전화사업자 가운데 하나인 스프린트 인수를 추진, 논란을 빚었다. 7월에는 미국 이동통신사업자 보이스스트림와이어리스를 인수했으며 최근 파워텔 인수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회사는 미국 외에도 유럽 각국의 차세대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자국은 물론 프랑스·오스트리아·스위스·네덜란드·스웨덴·노르웨이 등 7개국의 차세대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작업에 참여를 결정해놓고 있다.

일본 최대 통신사업자 NTT도코모의 글로벌화 작업 역시 만만치 않다. 무선 인터넷서비스 I모드 기술을 내세워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업자인 보다폰에어터치를 끌어내리고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이 회사의 목표다. 현재 세계 최대 휴대폰 단말기 업체 보이스스트림와이어리스의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으며 홍콩 통신사업자 허치슨원포어, 네덜란드 최대 이동통신사업자 KPN에도 자본출자를 통해 지분 참여하는 데 성공했다.

NTT도코모는 유럽에서 영국 보다폰에어터치 산하 이동통신업체인 오렌지 인수전에 나서는 등 허치슨원포어·KPN 등 관계사들과 협력해 유럽 통신시장 석권을 노리고 있기도 하다. 이 회사는 최근 미국의 웹호스팅업체 베리오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으며 한국의 IMT2000사업에도 눈독을 들여 SK텔레콤 지분출자도 추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도이치텔레콤이나 NTT도코모의 경우 해당국가 정부가 가지고 있는 지분이 상당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 회사의 대외 움직임은 국가적인 공세로도 비춰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회사가 가장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미국의 경우 정부차원에서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정부가 경계하는 것은 두 가지다. 국가안보 위협과 공정경쟁 체제 와해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이유는 네트워크 주도권 상실에 대한 우려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네트워크는 과거의 영토요, 곧 힘에 비유된다. 시간이 흐르고 국가 경제활동이나 개인의 활동이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비중이 지금보다 높아지면 유무선 정보통신 네트워크는 국가나 개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쥐고 있는 주체가 국가나 개인을 끌고 다닐 수 있는 고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네트워크 패권확보에 나서는 업체는 도이치텔레콤과 NTT도코모뿐만 아니다. 크고 작은 업체들이 전세계를 상대로 하거나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패권확보를 노리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정보통신 대국과 속국을 결정지을 수 있는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박주용국제부장 jy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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