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벤처기업들은 9월 1일 열릴 경제정책조정회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날 정부가 코스닥시장과 벤처기업을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벤처위기설에 심각한 반응을 보이지 않던 정부가 그나마 현실성 있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데 벤처기업들은 일단 고무된 분위기다.
이번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은 그간 몇 차례씩 지적해온 코스닥시장과 인수합병(M&A)에서 그 가닥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먼저 코스닥시장은 지난해 벤처기업의 직접적인 자금조달 창구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사실상 우리나라 벤처성장을 견인했다. 그러던 코스닥시장이 지금은 조정차원을 넘어 기초체력마저 부실해지면서 세자리 지수를 지켜낼 수 있는가 하는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코스닥시장의 수급불균형을 그 핵심원인으로 보고 있다. 공급물량이 넘쳐 주가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공급물량 과다를 해소하기 위해 코스닥시장의 자금을 쓸어가다시피 하는 대형 기업의 등록을 억제시키는 대신 성장가능성이 높은 소형 벤처기업을 쉽게 등록시키는 내용의 대책을 강구중인 것 같다. 지방 벤처기업들이 많이 등록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까지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코스닥시장을 중소 벤처기업 중심으로 판을 다시 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리고 코스닥시장에 거래소처럼 지수선물상품의 도입을 허용, 투자자들이 주가하락에 따른 손해를 최소화(헤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다. 코스닥시장에 지수선물상품이 도입되면 현물과 선물을 연계한 다양한 상품도 등장해 활발한 거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코스닥시장이 중소 벤처기업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거래가 활발해지면 벤처기업들은 다시 직접금융조달에서 숨통이 트이고, 이어 투자시장도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반영하듯 코스닥시장은 정부의 이러한 활성화 방안이 알려진 지난 28일 지수가 7.66포인트 상승, 3달여 만에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안만으로 벤처기업들이 마음놓고 코스닥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벤처와 코스닥이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NO」에 가깝다.
인위적으로 대형 기업의 코스닥등록을 억제시켜 수급불균형을 조절했다고 치자. 지방 벤처기업에 특혜를 주고 성장성이 높은 중소 벤처기업이 쉽게 코스닥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등록기준을 바꾼다고 해서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는가. 우선 지금의 코스닥시장 침체를 단지 수급불균형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다. 이보다는 거래소시장도 마찬가지지만 전체적인 금융시장 불안이 더 큰 원인이며, 근본적으로는 구조조정 미흡에 따른 시장의 신뢰부족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코스닥시장을 별개로 놓고 보자면 닷컴기업에 대한 위기론이 확산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또한 등록심사시 기업의 미래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심사기준을 개선하고 지방 벤처기업의 등록기준을 완화하려면 시장원리에 맞는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툴을 정부가 당장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리고 지방에 소재한 벤처기업이라는 이유 하나로 등록기준을 완화해 준다면 코스닥시장의 정체성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 또다른 수급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코스닥시장의 문턱을 높이거나 낮추는 것은 선택의 문제일 수 있지만, 이것이 코스닥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신경제의 엔진인 벤처를 육성하는 방법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코스닥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려면 차라리 지방과 중소 벤처기업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제3시장의 제도개선을 강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코스닥시장에 대한 응급처치보다는 경제체질의 강화를 정책의 우선순위에 올려 놓아야 하며, 또 M&A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의지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디지털경제부·이윤재부장 yj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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