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정책 성적표

박재성 논설위원 jspark@etnews.co.kr

김대중 대통령의 정보통신정책은 과연 몇 점을 받을 수 있을까. 집권 전반기가 끝나가면서 정보사회의 대표적인 산업분야인 정보통신분야에 대한 정책평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는 이에 따라, 또 처한 입장에 따라 그 평가는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정보통신정책이 올바른 방향을 지향했는지, 또 그것을 제대로 실행했는지로만 단순화시킨다면 의견이 크게 엇갈리지는 않을 것 같다.

먼저 김 대통령은 취임했을 당시 정보통신정책을 제대로 펼 수 있을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 못했다. 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한 것을 비롯해 기업의 구조조정을 강력히 시행했다. 또한 공공부문이나 노동부문의 개혁도 우선 순위에서 빠지지 않았다.

따라서 다가올 정보사회를 대비하는 정보통신정책이 실로 막중하다 하더라도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급급해 정보화 마인드를 펼치는 것은 뒷전일 수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김 대통령이 정보화의 중요성에 중점을 두어 왔던 것은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정보를 쉽게 습득하기 위해 국민들에 대한 정보화교육을 실시하고 또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국민들이 인터넷을 조기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편 것은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 업체들의 반발 속에서도 인터넷PC를 저가에 보급하고 주부를 비롯한 소외된 계층에 대한 인터넷 교육 등을 실시, 정보격차 해소에 나선 점도 장래를 대비한 시책이었다.

대기업이나 재벌 위주의 산업구조에 대한 대안이었겠지만 벤처기업을 장려, 육성한 것은 결과적으로 벤처기업의 대부분이 정보통신분야에 집중됨으로써 국내 산업구조를 고도화시키는데 한몫을 했다. 또 그것은 국내 산업구조가 대기업 위주로 형성됨으로써 자칫 허약해질 수도 있는 기반을 튼튼히 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한다.

수년을 끌어온 디지털 지상파 방송(HDTV) 규격을 정하고 그 실시 시기를 앞당겼으며 전자정부의 실현 등은 관련 산업이나 국민 등에 미치는 파장 등을 감안할 때 성과로 보인다.

그렇지만 성공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도 없지 않았다.

정보사회의 혈맥인 정보통신망의 경우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는 다른 나라보다 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공기업인 기간사업자나 민간사업자 등이 별 구분없이 한데 엉켜 망을 포설함으로써 전체적으로는 대규모로 투자가 이루어진 반면 실효성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이같은 문제는 과당경쟁까지 겹쳐 사업자들의 수익구조를 지속적으로 악화시키며 부실로 이어질 경우 안정된 서비스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을 잉태시켰다.

대표적인 첨단산업인 반도체의 경우도 과잉·중복투자를 해소하기 위한 구조조정(빅딜)이라는 명목으로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합병시켰다. 장차 대규모 설비투자를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수긍이 가는 조치였으나 대부분의 생산제품을 수출하는 상황에서 과잉이나 중복투자를 따지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정부는 추후 동부그룹이 반도체산업에 참여하는 것을 허가하고, 또 국내 다른 반도체업체가 무려 1조원을 투자하는 것도 용인했다. 시대의 흐름과 상황변화를 이유로 들 수 있으나 정책의 일관성은 퇴색한 느낌이다.

이제 김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를 절반정도 남겨두고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남은 임기가 충분히 길고 중요하다. 초고속정보통신 서비스망을 정비하고 재벌 위주의 이동전화 서비스정책은 청산해야 할 과제다. 이번 정부의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인 벤처기업의 육성이 이제 씨를 뿌려 싹을 틔웠다면 그것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거름을 주고 가꾸는 것은 숙제중의 하나다. 잔여 임기동안 「21세기의 우리사회 비전은 바로 정보통신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정책을 통해 보여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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