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 논설위원
북한의 개방정책이 중국식 개방모델을 원용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중국식 개방모델에 단초가 된 것이 바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苗白苗)」론이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철저했던 중국이 흑묘백묘식 자본주의 이념을 공식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은 1978년 12월의 중국공산당 제11기 제3회 중앙위원회 전체회의(3中全會)에서다. 이 회의에서 중국공산당은 신헌법에 농업·공업·국방·과학기술 등의 분야에 4대 현대화 추진 조항을 삽입하고 그 실천방안으로서 시장경제의 도입과 대외경제개방을 결정하는 혁명적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 3중전회를 주도한 인물이 50년대 말부터 류샤오치(劉少奇)와 함께 흑묘백묘론을 펴며 중국공산당내 주자파(走資派)를 이끌던 실용주의자 덩샤오핑(鄧小平)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반혁명적 적대세력」으로 몰려 66년 농촌으로 추방되는데 이 사건이 단초가 돼 일어난 것이 문화혁명(文化革命 66∼76년)이다.
덩샤오핑이 권력의 핵인 당부주석, 해방군총참모장 등으로 복권된 것은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문화혁명이 공식적으로 종언을 고한 77년이다. 그러니까 3중전회는 덩 실용주의 노선의 첫번째 작품인 셈이다. 흑묘백묘론은 그가 복권된 지 5년 만인 82년 중국공산당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12全大會)에서 채택된 이른바 「중국특색적사회주의(中國特色的社會主義)」에서 그 이론적 틀을 완성하게 된다.
중국의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중국특색적사회주의는 「하나의 중심, 두 개의 기본점(一個中心, 兩個基本點)」 전략이 그 골자다. 하나의 중심이란 공산당의 지도 아래 모든 역량을 국가적 당면목표인 사회주의 현대화건설 즉, 경제건설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두 개의 기본점은 경제건설을 실천하기 위한 정책과 원칙으로서 한편으로는 개혁과 개방정책을 추진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4항 기본원칙」을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4항 기본원칙은 사회주의 노선, 무산계급 독재, 중국공산당의 지도,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마우쩌둥주의 등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중국의 개방정책은 덩샤오핑의 표현대로 『계획을 갖고 자본주의 선진기술과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받아들이더라도』 4항 기본원칙을 견지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현대화된 중국식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중국특색적사회주의 모델을 받아들인 것은 84년 합영법(合營法) 제정을 통해 외자를 직접 유치하면서부터다. 이어 91년에는 중국 센첸(深●) 경제특구를 본뜬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지정했고 92년에는 헌법개정을 통해 경제적 신용주의를 합법화했다.
그러나 북한의 개방은 체제에 대한 도전을 감수한 중국과 달리 상당히 제한적이며 간헐적으로 이뤄져 왔다. 합영법이 제정되고 나서 7년이 지난 뒤에서야 특구가 지정된 것이나 84년부터 93년까지 10년 동안 중국이 2900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한 반면 북한은 고작 1억5000만달러에 그친 것 등이 좋은 예다.
중국과 북한 개방정책은 양국이 모두 흑묘백묘의 묘수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중국은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쪽으로, 북한은 이를 철저하게 차단하는 쪽으로 각각 방향을 달리 잡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북한이 6·15정상회담 이후 개방의 보폭을 크게 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남한으로부터 흡수통일 위협이 제거됐다는 안도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른바 「자력갱생」 기반의 「우리식」 사회주의의 한계 때문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95년 대기근사태에서 보았듯이 「우리식」 사회주의가 「인민」을 해방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식」의 한계가 『마오쩌둥의 혁명노선이 10억 인구의 의식주 문제까지를 해결할 수 없다』는, 78년 중국공산당의 인식전환과 비로소 그 궤를 같이한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앞으로 추진하게 될 새로운 「북한특색적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흑묘백묘의 묘수가 얼마나 유효적절하게 활용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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