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첫해 상반기 결산을 끝낸 요즘 중대형컴퓨터 업체 사장들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다. 어느덧 표정관리까지 생각할 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국제통화기금(IMF) 전후의 다급함이나 조급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물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매출이 늘어난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대형컴퓨터 업체들은 상반기 6개월 동안 올 한해 매출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4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한국IBM·한국HP·컴팩코리아 등 대형 정보기술(IT) 업체들은 물론이고 그동안 답보상태를 보여왔던 한국유니시스나 완만한 상승세에 머물러 있던 한국후지쯔까지 원래 목표보다 2배 이상 높은 매출을 달성했다. 한국썬은 특히 지난해 동기에 비해 6배 가량 높은 「눈부신 전과(?)」를 올린 끝에 유닉스 부문에서 한국IBM과 한국HP를 제치고 정상에 등극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업계가 모처럼 경함하고 있는 짜릿함이 고객들에게는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사후관리(AS)를 놓고 업체 측과 티격태격하고 있다.
경북 안동의 모 대학 K교수의 경우는 유명 A기업의 시스템을 올해 초 구입했으나 운용체계(OS) 프로그램이 작동되지 않아 AS를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금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업체는 지방을 커버할 AS 담당 요원이 없다.
광주의 모 기업도 B기업의 채널을 통해 여러대의 시스템을 도입했으나 무상 제공하기로 했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주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 시스템에 포함해 공급하기로 한 옵션 제품을 받기는 했으나 이 제품을 사용하려다 보니 할 수 없이 별도의 프로그램을 구입해야 했다.
이같은 일이 왜 일어날까. 대부분의 공급업체들이 매출을 늘리기 위해 각종 서비스 프로그램을 양산해 냈으나 이에 따른 AS조직을 확대하거나 전담인력의 확보에는 인색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90%라는 무차별적인 할인율까지 적용해 일단 「팔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한 마당에 더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물론 초저가 제품을 선호하는 기업고객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스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 하반기 이후 이같은 일은 더욱 늘어날 것같다. 시스템 도입 자체보다는 도입 이후의 메인테넌스 계약이나 AS가 더 문제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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