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테헤란밸리 컨트래딕션(contradiction)-

여준영 프레인 대표(hunt@hbtel.co.kr)

1999년 가을, 테헤란밸리에는 수급과 관련된 세 가지 모순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인력수급상의 모순이다. 뽑는 쪽은 늘 구인난에 허덕이지만 직장을 희망하는 많은 사람에게는 입사장벽이 만만치 않게 높다. 10명을 뽑기 위해 채용공고를 하면 수천명이 몰려들지만 정작 한두 명밖에 채용하지 못하는 식이다.

두번째는 정보수급의 모순이다. 이것은 홍보(PR)를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가 직업상 느낀 점이다. 늘어만가는 벤처업체는 보도자료를 양산하고 있는데도 정작 기자들 입에서는 똑같은 이야기, 『뭐 쓸 만한 기사거리 없나』라는 푸념이 반복된다.

세번째는 자본수급의 모순이다. 여기저기 형성된 갖가지 펀드들과 마땅한 투자처를 찾아 헤매는 유동자금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것 같은데 막상 투자를 받으려면 단돈 10원 구하기도 어렵다. 트렌드에 부합하는 업종(최근에는 B2B나 무선인터넷, 게임, 바이오 관련사업이 해당된다고 한다)은 투자 제의를 거절하기에 바쁘지만 그 외의 많은 기업들은 투자받기가 하늘의 별따기 라는 것이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투자자들의 환영을 받던 콘텐츠 위주의 닷컴기업이나 쇼핑몰들은 그야말로 「경기 좋을 때」 받아놓은 투자금으로 근근이 연명하는 실정이다.

이같은 세 가지 모순현상은 수요도 많고 공급도 많은데 좀처럼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이유가 있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동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동시에 풍부한 재고를 갖기도 하는 아주 이상한 현상이다. 이것을 학창시절 공부했던 수요공급의 원칙으로 풀려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3년지치부(三年之致富)에 집착해온 경영자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위해 인재육성에 나서고, 캐피털 게인(Capital Gain)에 집착해온 일부 투자가가 부화뇌동 투자를 자제하면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모순들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이론서적이나 고차원 학습도 필요없고 그저 「경제학원론」에만 충실해도 풀어낼 수 있는 쉬운 문제다.

경제활동의 사전적 의미는 「물질적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유통·소비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반쪽 경제인들이 바로 세가지 모순의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캐피털 게인에만 집착하는 일부 벤처들은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이익을 바라는 몰염치족이다. 인재육성에는 관심이 없고 완성된 인재만을 공급받으려는 경영자들도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다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기업에 대한 역할을 바라는 몰염치를 선보이고 있다.

이같은 반쪽 경제인들이 경제활동의 사전적 의미에 내포돼 있는 「사회적 관계」에 충실하려 노력한다면 테헤란로에 만연하고 있는 캐피털 게인이나, 아이디어 게인이라는 거품이 진정한 「노력 소득」이나 「가치 소득」의 성공사례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여름, 테헤란밸리에는 벤처거품론의 진원지일지도 모를 세 가지 악성 모순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테헤란밸리 벤처 백년지대계」를 설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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