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교류 선행과제

서현진 논설위원 jsuhⓐetnews.co.kr

지난 97년 귀순한 방영철씨가 북한에서 일했던 곳은 중앙당 38호실,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외화자금 관리부서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6·15 정상회담 이후 대북사업 열기가 고조되면서 그는 각종 대북투자 설명회 등에서 가장 인기있는 연사가 됐다.

그에 따르면 요즘의 북한은 『뇌물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라고 한다. 북한 정부가 이같은 부패를 막지 못하는 것도 상하간 뇌물고리가 마치 「다이아몬드 분자구조처럼 튼튼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뇌물관행이 얼마나 심한지 주민들 사이에서도 「당당하게 뇌물을 받아서 당간부, 보이지 않게 뇌물을 받아서 보위원, 안전하게 뇌물을 받는다 해서 안전원」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최근 북한을 다녀온 남한 사업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전혀 근거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가령 베이징 등지에서 만나는 북한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귀국할 때 자신의 상급자에게 가져갈 「선물」을 남쪽 사람들이 챙겨주길 바란다고 한다. 몇년 전만 해도 단순한 흥밋거리나 북한체제를 비판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됐을 법한 얘기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고 한다. 이런 북한 사람들의 속성이나 정보가 대북교류 과정에서 남한 사업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남 창구를 담당하는 북한 관리에 비해 대북교류를 원하는 남한 사람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이같은 개연성을 높여준다. 예를 들어 경제 분야에서 남한 사업가들이 가장 먼저 접촉하는 창구는 민족경제협력련합회(민경련)라는 기구인데 전체 직원수가 고작 10여명 안팎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남한 사람들이 민경련 직원들을 만나려면 줄을 서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내막이야 어떻든 북한 사람들을 어렵게 만나고 돌아온 사람들은 남쪽에서 그야말로 「상종가」를 달린다. 이들이 초청되는 설명회나 간담회에 대북교류에 뜻을 둔 기업인들이 쇄도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이들의 얘기는 대개 대북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나오는 것들이다. 가령 경공업이 발달한 신의주는 정보기술 분야가, 전기전자공업이 발달한 평양은 첨단산업 투자가 유망하다는 식이다. 투자를 하려면 민경련 산하 어느어느 총회사와 상담을 하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설명회의 또다른 단골 메뉴는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자신만이 해냈다는 무용담조의 북한 방문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대목이다. (설명회 소식을 전하는)남쪽 신문이 북쪽으로 다 보내지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이 어렵게 될 터이지만 이를 감수하고 모든 것을 공개하겠노라는 말도 곁들인다. 어느어느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로비를 하면 특효가 있다고 알려주는 친절도 잊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런 행사가 이어질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현재 북한은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당장 수익 모델을 낼 수 있는 투자 적격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성공한 기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최고위층과의 직거래나 엄청난 희생을 치른 대가로서 이뤄진 매우 희귀한 사례라고 한다. 자본·기술·인력 그리고 체제 등 모든 분야에서 남북의 격차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과 남쪽의 하드웨어 기술을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유발될 것이라는 IT분야만 해도 그렇다.

현재 IT분야는 컴퓨터 키보드 자판부터 서로 다르게 배열하는 등 여러 기술표준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소프트웨어가 우수하다는 것도 하드웨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러하다는 의미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남과 북은 5∼6년 정도의 기술격차가 엄존한다고 한다. 수만명에 이른다는 기술인력을 활용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중저급 업무인 프로그램 코딩작업 등에 동원하려 해도 최소한 3개월 정도의 밀도 높은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른바 기술이전교육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애써 구하려 해도 북한은 지금 당장 우리에게 내 줄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현시점에서 대북교류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눈앞의 이익보다는 어떻게 저들을 대화가 통할 수 있는 수준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끌어 올리느냐다. 지금은 힘을 모아 이런 방책을 함께 논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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