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통일정보통신연구소 소장 kskim@etnews.co.kr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은 55년동안 분단되었던 남과 북의 시간과 거리의 벽을 일시에 허물어 버린 듯했다. 분단 이후 거의 베일에 가려 있던 북한 사회의 모습이 제한적이긴 하나 TV 생중계로 전달되자 우리 모두는 감격과 충격으로 흥분했다.
그런데 그 충격과 당혹스러움은 전달된 새로운 정보의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상회담이 열린 며칠동안에 국내외 TV·신문을 비롯한 모든 매체들이 일시에 쏟아 놓은 엄청난 분량의 북한 관련 정보의 홍수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북한 정보의 홍수는 반세기동안 굶주렸던 궁금증에도 불구하고 소화불량증을 일으키게 했다.
우리는 이들 정보를 차분히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을 소화시킨 바탕 위에 남북의 화해, 평화공존과 경제협력 그리고 통일이라는 대명제를 위해 차분히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논자들은 이를 위해서는 우선 남한내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북 경협이나 교류는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두고 투명하게 추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정인이나 집단의 공명심을 충족시키는 대상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당국이나 대북사업과 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경제산업계·학계 및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주체들이 서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고 공유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대외정책이 남북교류와 경제협력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문호를 획기적으로 개방하거나 가까운 시일 안에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전망이다. 또 대북 협력사업 경험자들도 북한의 여러 제도와 인식이 남한과 너무 다르고 이를 수정하려면 시일을 요하기 때문에 인내심과 긴 안목을 가지고 추진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충고한다. 성급한 사업성과나 특수기대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북 경제협력은 북한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면서 실현 가능하고 상호 보완적인 분야부터 점진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특정산업, 과학기술, 통신, 문화 등 비정치 분야부터 교류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북 교류 및 협력전담기구 설치가 시급히 요구된다. 지금까지 통일부가 대북 접촉창구역할을 맡아 왔으나 거기에는 산업이나 과학기술·정보통신과 같은 전문 분야를 담당할 조직이나 인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부나 정부내에 산업 전문분야 남북교류 및 협력을 수용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기업이나 단체들이 남북교류나 협력사업을 추진할 때 통일부를 통해 소정의 행정절차를 밟아왔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나 민간단체들이 각자의 노력으로 북한측과의 협력사업을 어느 정도 타진한 후에 행정절차를 거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기 때문에 정부는 단지 가부를 판단하는 역할만 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남북 정부당국간의 대화 채널이 정상적으로 열린 상황에서 남북 경협에 있어서 관련당국은 종전의 수동적인 자세를 벗어나 종합적이고 기본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그 바탕 위에서 협력사업이 추진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중국시장 진출 초기에 경험했던 뼈아픈 시행착오를 또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 당시 국내 기업들이 단지 거대한 중국시장과 낮은 임금만 보고 충분한 정보수집이나 시장조사 없이 무모하게 진출해 낭패를 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 최근 대북경협 러시가 과거 중국 진출 때와 비슷한 양상을 띠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우리는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경협을 성공으로 이끌려면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최근 경제단체·기업 및 정보통신 분야 정보서비스업체들이 인터넷을 통해 대북경협에 필요한 정보와 자문 서비스를제공하는 한편 세미나와 설명회 등을 개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의 정보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이같은 활동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현대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합의에 따라 현대가 평양·금강산 등을 비롯한 북한지역에서 유무선 통신사업을 벌이기로 한 것은 또 하나의 획기적 일이라 하겠다. 이는 북한의 정보화를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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