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제3차 일본대중문화 개방에 대해...모인 문화산업부장

정부는 최근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3차 개방을 단행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9월 단행한 2차 개방의 무게와는 사뭇 달라보인다. 거의 메가톤급이다. 일부에서는 전면 개방에 가깝다고 혀를 찰 정도다. 일본 대중가요의 공연을 전면 허용한 것이나 18세 미만 관람불가의 영화를 제외한 모든 일본영화의 국내 상영을 허용한 것 등은 예상을 웃도는 개방 수위다. 국제영화제 수상작일 경우 극장용 만화도 들여올 수 있도록 했고 제한적이지만 케이블TV 방송에서도 일본영화를 방영할 수 있게 했다. 다음 수순은 굳이 들여다 보지 않아도 알법하다.

당장 불똥이 튈 곳은 애니메이션업계와 영화계로 예상된다. 정부는 「하나비」 「카게무샤」 「우나기」 등 이른바 국제영화제 입선작들이 국내에서 맥을 못췄다는 점에서 파급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계의 시각은 다르다. 일본영화의 점유율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올 상반기 영화시장 점유율(서울관객 기준)에 따르면 우리영화의 경우 전년동기대비 10.7% 감소한 24.7%에 불과한 반면 일본영화는 6.7% 증가한 9.8%를 기록했다. 「셸위댄싱」과 「사무라이 픽션」 「철도원」 등은 무려 2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해 화제를 일으킨 「러브레터」는 「오겡키 데스카」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120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이같은 추세로 나아가면 올해의 우리영화 점유율은 지난해 수준을 밑돌 것이라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한 것 같다.

애니메이션업계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극장가에 본격 소개되기 시작하면 국산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일명 원령공주)」는 벌써부터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애니메이션업계는 여기에다 완성도와 흥행성을 고루 갖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헤이세이 너구리 대전쟁」 「인랑」 등이 잇달아 국내에서 개봉될 경우 적지않은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반면 프로테이프업계와 공연계는 환영 일색이다.

공연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본 대중문화 공연 허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테면 음반 홍보수단으로만 여겨져 왔던 공연산업이 일본의 대형가수 유치를 통해 수익모델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로 12일 오후 서울 힐튼호텔 컨번션센터에서 열리는 일본의 정상급 록밴드 「페니실린」의 내한공연은 이미 매진사태를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침체의 늪에서 허덕여 온 프로테이프업계도 일본영화의 단계적 개방조치를 단비로 표현하고 있다.

올 상반기 프로테이프시장은 전년동기대비 12.4%의 감소를 나타냈다. 수요부진과 판매 양극화 현상이 주원인이었다. 작품수는 증가했는데 판매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한다. 판권구득난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프로테이프업계 입장에서는 반길 만하다.

이를 종합해 보면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단계적 개방 조치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3차개방 수위가 메가톤급임에도 불구, 연착륙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다 게임·음반업계의 반응도 예상외로 차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사전에 마련한 시나리오대로 잘 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일본은 미국에 이은 세계 최대의 콘텐츠 국가다. 애니메이션·캐릭터·출판분야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마케팅은 정평이 나 있으며 자국에서의 일본영화 점유율은 40%를 웃돈다. 음반 제작·유통의 과학화는 80년대 말에 실현했다. 저작권에 대한 대한 공세는 아예 접어두고 있다. 어쩌면 저들은 빗장을 완전히 풀 때까지 무심할 정도로 칼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가 너무 일찍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 관대해 진 것이 아닌가 묻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포용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일본 대중문화를 끌어안을 관대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

일본속담에 「좋은 일은 서두를수록 좋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일본문화 개방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수용하되 비교우위 관점에서 이를 다루는 지혜가 필요하다.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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